노 "면목없다"..전 대통령 세번째 검찰 조사
심야까지 조사 이어질 듯


대검찰청 중앙수사부(이인규 검사장)가 30일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에게서 재임시 금품을 받았다는 의혹과 관련, 노무현 전 대통령을 소환조사했다.

전직 대통령이 검찰 수사를 받는 것은 1995년 노태우, 전두환 전 대통령에 이어 노 전 대통령이 세번째다.

노 전 대통령은 이날 오전 8시께 청와대 경호처가 제공한 버스로 경남 김해시 봉하마을 사저를 떠나 오후 1시20분께 서울 서초동 대검찰청 청사에 도착, 조사실로 향해 검찰의 조사를 받았다.

검찰은 박 회장이 노 전 대통령 가족과 측근에게 준 돈의 성격과 용처를 비롯해 노 전 대통령이 재임시 이를 알았는지를 집중적으로 추궁했다.

◇버스로 고속도로 5시간 상경 = 노 전 대통령은 이날 아침 봉하마을 사저에서 나와 오전 8시께 문재인, 전해철 변호사 등 측근 인사와 함께 청와대 경호처가 마련한 리무진 버스를 타고 상경길에 올랐다.

버스에 오르기 전 노 전 대통령은 취재진 앞에서 "국민 여러분께 면목이 없다.

실망시켜 드려서 죄송하다"며 짧게 사죄의 뜻을 표했다.

노 전 대통령을 태운 버스는 청와대 경호팀, 경찰의 호위 속에 동창원 나들목을 통과한 뒤 남해고속도로∼중부내륙고속도로∼당진-상주간 고속도로∼경부고속도로를 옮겨 타면서 서울로 향했다.

노 전 대통령 일행은 별다른 돌발상황 없이 순조롭게 상경했고 검찰과 협의한 소환 시각보다 10분 정도 이른 오후 1시20분께 봉하마을 출발 5시간여 만에 서초동 대검찰청에 도착했다.

버스에서 내려 포토라인에 선 노 전 대통령은 봉하마을을 떠나기 전 "국민에게 면목이 없다"고 심경을 밝힌 이유를 묻는 취재진에 "면목없는 일이죠"라고만 했으며 후속 질문에 "다음에 하시죠"라고 짤막하게 대답하고 나서 대검청사로 들어갔다.

◇특별조사실서 본격 신문 = 우병우 대검 중수1과장 등 수사팀은 오후 1시40분께부터 1120호 특별조사실에서 문 변호사의 입회하에 노 전 대통령에 대해 본격적인 신문을 시작했다.

조사에 앞서 이인규 대검 중수부장은 노 전 대통령을 중수부장실에서 맞이해 차를 함께 들며 소환조사의 불가피성을 설명하고 협조를 구했고 노 전 대통령은 조사과정에서 서로 입장을 존중해 달라는 뜻을 전했다.

검찰은 노 전 대통령에게 대통령 권한, 직무상 포괄적 영향력 등 전반적인 사안을 묻는 것을 시작으로 신문에 착수, 박 회장이 건넨 100만 달러와 500만 달러의 인지 시점과 용처 등을 캐물었다.

100만 달러는 박 회장이 2007년 6월께 정상문 전 청와대 총무비서관을 통해 권양숙 여사에게 전달했으며, 500만 달러는 노 전 대통령의 퇴임 직전인 지난해 2월 말 조카사위 연철호 씨의 홍콩 계좌에 입금됐다.

검찰은 노 전 대통령이 이 600만 달러를 먼저 요청했다는 박 회장의 진술을 근거로 이 돈이 박 회장이 참여정부 시절 얻었던 사업상 혜택에 대한 반대급부로 보고 사실상 노 전 대통령에게 건넨 뇌물이라는 판단을 내렸다.

이에 대해 노 전 대통령은 100만 달러는 권 여사가 빚을 갚는 데 썼고 600만 달러는 순수한 투자금으로 대통령 재임시엔 이 돈 거래를 몰랐다고 혐의를 한결같이 부인하면서 치열한 공방이 벌어진 것으로 전해졌다.

아울러 정 전 비서관이 챙긴 청와대 예산 12억5천만원을 노 전 대통령이 알고도 묵인했는지, 이 돈이 노 전 대통령을 위한 자금인 지도 검찰은 캐물었다.

홍만표 대검 수사기획관은 "노 전 대통령이 상의를 벗고 편안한 분위기에서 조사에 임했다"며 "진술거부권을 행사하지 않고 자신의 주장을 자세히 펴고 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한편 검찰은 이날 밤 10시까지 조사를 마무리하지 못하면 전직 대통령에 대한 예우차원에서 재소환하기보다 노 전 대통령의 동의를 얻어 자정을 넘겨서라도 심야 조사를 한다는 계획이다.

특히 의혹에 싸인 600만 달러를 둘러싼 노 전 대통령과 박 회장의 입장이 전혀 다른 만큼 실체적 진실을 밝히기 위해 양자 대질신문도 벌어질 가능성이 크다.

또 이 자금의 흐름에서 노 전 대통령 측과 박 회장의 고리역할을 했던 정 전 비서관과 노 전 대통령의 진술이 어긋나면 이들 간 대질신문도 예상할 수 있다.

(서울연합뉴스) 강훈상 기자 hskang@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