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항공과 한국항공우주산업(KAI)이 에어버스의 90석짜리 중형 항공기 개발에 참여하고,에어버스는 이 기종을 한국에서 최종 조립해 세계시장에 판매하는 협력이 추진됨에 따라 국내 항공산업이 도약할 수 있는 일대 전기가 마련될지 주목된다.

항공산업계는 "방위산업으로 쏠려 있던 국내 항공산업을 민항기 제조분야로 업그레이드하는 기폭제로 작용할 수 있을 것"이라며 성사 가능성에 기대를 걸고 있다.

◆에어버스,왜 한국 선호할까

양측 간 협력은 에어버스가 2015년부터 150석짜리 기종을 생산하기에 앞서 90석짜리 기종 개발에 나서기로 했다는 사실이 지난해 알려지면서 구체화되기 시작했다. 150석 기종은 인근 국가간 여행에 적합, 세계에서 가장 많은 수요를 창출할 것이고,90석 기종도 상당한 수요가 예상된다는 게 에어버스의 판단이다. 여기에 중국이 독자적으로 민항기 개발에 성공한 데다 일본의 미쓰비시가 100석 기종 독자 개발에 착수한 것도 에어버스가 한국과의 협력을 모색한 배경이 됐다. 한 소식통은 "한국과 달리 일본은 보잉과 1970년대부터 '리스크 셰어링'(위험 공유 · 개발비를 상당액 부담하고 판매량에 따라 그만큼 수익을 가져가는 것) 방식으로 주요 기종 개발에 주도적으로 참여했다"며 "에어버스가 가격경쟁력 등을 감안해 유럽 이외 지역의 파트너를 찾아 나서면서 자연스럽게 한국에 관심을 갖게 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여기에 대한항공과 에어버스가 수십년간 맺어온 유대관계도 이번 협력의 배경이 됐다는 분석이다. 대한항공은 1975년 시장성이 검증되지 않은 에어버스의 A300 5대를 아시아에서 처음으로 도입,판로를 열어줬다. 여기에 2014년까지 초대형 항공기인 A380 10대도 들여온다.

◆방산 일변도에서 민항기로 업그레이드

중형 민항기 개발은 10여년 전에도 추진됐다. 당시 파트너 후보는 판로가 보장된 중국.그러나 아쉬울 것 없는 중국이 시간을 끌면서 지지부진했고 한국의 기술력도 달려 진전을 보지 못했다.

대한항공과 KAI는 에어버스와 보잉에 항공기 부품을 일부 납품하고 있다. 하지만 그 규모는 전체의 1% 정도에도 미치지 못한다. 두 회사의 항공기 제조업 분야 매출은 모두 합쳐 1조원을 조금 넘는 수준이다.

반면 일본은 미쓰비시 가와사키 후지 등이 항공기 개발에 적극적으로 참여해 보잉 B767의 경우 약 25%의 부품을 직접 조립 · 생산하고 있다. '일본이 없으면 항공기 생산이 불가능하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조태환 경상대 기계항공공학부 교수는 "항공산업은 군수와 민수가 조화를 이뤄야 지속적으로 생존할 수 있는 첨단 복합산업"이라며 "민항기 제조가 확대되면 단기성 군수 프로젝트가 끝날 때마다 일감 부족으로 겪어야 하는 비효율을 해소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T-50 고등훈련기를 개발한 KAI가 이 같은 비효율의 대표적인 사례라는 것이다. 일감 부족으로 숙련 인력들이 뿔뿔이 흩어지는 것도 문제다.

업계에서는 항공산업이 자동차에 버금가는 전후방 연관효과가 있는 데다 일자리 창출효과가 큰 만큼 정부가 적극 지원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관건은 40억~50억달러에 달하는 개발비용을 우리가 얼마나 부담할 수 있느냐다. 에어버스는 수요가 충분하다며 상당액을 부담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한국에서 조립 · 생산이 차질 없이 이뤄질 수 있도록 질 좋은 부품을 충분하게 공급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느냐도 협력사업의 성사 여부를 결정짓는 중요한 변수다.

류시훈 기자 bad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