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심한 경기침체로 기업들이 감원과 급여 삭감에 나서고 있지만 글로벌 대기업들은 위기 속에서도 혁신과 차세대 제품개발을 위한 연구·개발(R&D) 투자를 줄이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6일 마이크로소프트(MS)와 애플, 3M 등 연구개발 투자액 상위 28개사를 대상으로 분석한 결과 이들의 작년 4·4분기 매출은 전년 동기보다 7.7% 줄었으나, R&D 투자액은 0.7% 감소하는데 그쳐 불황에도 R&D투자를 줄이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고 보도했다.

이들 업체는 경기가 회복된 후 경쟁에서 이기려면 어려운 시기에도 투자를 지속해야 한다는 교훈을 과거의 경험에서 얻었다고 설명하고 있다.

아이팟에서 연료절감형 항공기 엔진에 이르기까지 시대를 이끌어온 혁신형 제품중 상당수가 어려웠던 시기에 잉태된 것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경기가 회복세로 돌아설 때를 대비해 지금부터 투자를 통해 혁신의 '씨앗'을 뿌려야 한다는 것이다.

MS는 작년 4분기 매출이 전년동기와 비교해 큰 변화가 없었지만, R&D 투자는 21% 늘렸다.

인텔은 작년 4분기 순이익이 90%나 감소했지만, 올해 R&D 투자규모를 작년보다 약간 줄어든 54억달러로 책정했고 앞으로 2년간 공장 현대화 사업에 70억달러를 쏟아부을 예정이다.

3M은 지난 15개월간 4만7천명을 감원했고 올해 자본지출을 30%나 삭감할 예정이지만, 올해 R&D 투자는 작년과 같거나 약간 늘어난 수준으로 계획하고 있다.

반도체 제조업체인 프리스케일 세미콘덕터도 4분기 매출이 거의 40%나 줄었지만 R&D 투자는 6%만 줄였다.

신문은 어려운 시기에 연구개발을 소홀히 한 결과는 애플과 모토로라의 사례에서 여실히 드러난다고 예를 들어 설명했다.

애플은 1999∼2002년 매출이 6% 이상 줄었음에도 R&D 투자를 42%나 늘린 덕에 아이팟이나 아이튠스 등의 히트상품을 배출할 수 있었던 반면, 2002년 R&D 투자를 13%나 줄였던 모토로라는 2004년 레이저폰의 성공 이후 후속작의 성과가 좋지 못했고 이후 시장점유율과 주가가 동반 하락했다는 것이다.

또 R&D 투자의 성과는 단순한 투자규모뿐 아니라 얼마나 투자를 효율적으로 집행하느냐에 따라 좌우되기도 한다.

소프트웨어 업계가 매출의 13.6%를 R&D에 투자할때 오라클은 12%만 투자했지만 2008 회계연도 수익이 전년대비 29%나 늘었고 계속 성장을 거듭하고 있다.

생사의 위기를 겪고 있는 제너럴모터스(GM)가 소형 하이브리드차나 전기기술을 개발하는 대신 수년간 대형 트럭이나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에 치중했던 것이나 제너럴일렉트릭(GE)이 2001∼2003년 침체때 고효율의 LED 기술을 따라잡지 못했던 것은 차세대 기술에 투자를 아끼다가 낭패를 본 사례에 속한다.

보스턴 컨설팅 그룹의 짐 앤드루 선임파트너는 "R&D 예산을 대규모로 삭감하는 것은 자살행위라는 것을 기업들이 깨닫고 있다"고 말했다.

(뉴욕연합뉴스) 김지훈 특파원 hoonkim@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