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길진 칼럼] 부자들 밝히지 않는 돈 버는 비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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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부자가 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한다. 하지만 주위를 잘 살펴보면 노력과 돈이 비례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부자 중엔 ‘저렇게 악질 같은 사람이’, ‘저토록 빈둥거리는 사람이’하며 남들에게 손가락질 받는 대상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돈 버는 사람은 따로 있을까. 부자는 타고난 것일까. 노력과 비례하지 않는 이 사회는 정녕 불공평한 세상일까.
70년대 내가 동대문상가에서 목격한 일이다. 상가 여러 개를 소유한 억척스런 여사장이 있었다. 여사장은 인정사정이 없었다. 세입자가 조금이라도 세를 밀리면 가차 없이 상가를 비우게 했다. 오일쇼크로 극심한 불황이 닥쳤다.
상가 세입자들이 제때 월세를 내지 못하게 되었다. 역시나 여사장은 눈 하나 꿈쩍하지 않고 세입자를 몰아냈다.
“저 여자는 바늘로 찔러도 피한방울 안 나올 겨.”
“피가 뭐야, 눈물도 없다니까.”
“하늘은 뭐하나 몰라. 저런 사람이 부자라니 말이야.”
여사장의 지독한 돈 탐에 다들 혀를 내둘렀다.
하지만 여사장에겐 남들이 모르는 사실이 있었다. 그녀는 천하에 둘도 없는 효녀였다. 아침, 저녁으로 아버지 이부자리를 봐드리고, 먹고 싶다는 음식이 있으면 무슨 짓을 해서라도 구해왔다. 아버지를 직접 수발하는 일을 한 번도 거른 적이 없었다.
그러 어느 날 일이 터졌다. 아버지가 몸 져 누운 것이다. 아버지가 딸을 만나로 잠시 출타했다가 돌아온 직후였다. 무슨 일이 있었을까.
여사장은 걱정스런 눈으로 병상의 아버지를 간호했다. 하지만 아버지는 한마디 말도 없었다.
“아버지 무슨 일이세요? 말씀을 하세요?”
딸과는 그렇게 스스럼없이 터놓고 이야기를 나누던 아버지였지만 한 마디 말없이 입을 꼭 다물었다. 영문을 모르는 여사장은 애가 탔지만 아버지는 돌아누울 뿐이었다.
답답한 침묵의 며칠이 지나고 아버지가 드디어 입을 열었다.
“이제는 생각을 다시 해야겠다. 그렇게 번 돈으로 하는 효도는 달갑지 않다.”
아버지가 누운 건 딸을 만나러 동대문 상가에 갔다 온 직후였다. 상가 벽에 써 있는 구호 낙서들을 보고 깜짝 놀란 것이다.
“00여사장은 물러가라.”
“악덕 상가주인 00을 몰아내자.”
여사장이 하도 악랄하게 굴자 상가 세입자들이 들고 일어나서 시위를 했던 것이다.
여사장은 당장 상가로 달려갔다. 그리고 상가 사람들에게 전했다. ‘지금까지 밀린 세는 받지 않을 것’이라고 선포했다. 집에 돌아온 여사장은 아버지에게 그 소식을 전했다. 그제야 아버지는 병석을 털고 일어났다.
사람들은 여사장을 천하의 악질이라고 욕을 해댔다. 하지만 그녀는 아버지에겐 둘도 없는 효녀였다. 남의 마음을 아프게 한 일은 그 일대로 과보로 받겠지만, 효심 또한 부자로서의 필연적으로 과보인 것은 아닐까.
남들은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잘 살펴보면 부자는 겉보기와는 다른 숨겨놓은 무언가 한 수가 반드시 있다. 내가 아는 한 분도 그랬다.
그렇게 소문난 부자이면서도 수십 년 입은 양복 깃은 다 해져있고, 설렁탕으로 한 끼를 때울 정도로 인색한 구두쇠다. 주변 사람들이 다 손을 내저을 정도다. 게다가 마누라에겐 잘하면서 늙은 홀어머니와는 따로 살고 있다. 누가 봐도 효도와는 거리가 먼 인물처럼 보인다.
그러나 실상은 그렇지 않다. 고부갈등으로 모시고 살지는 못하지만, 매일 아침 9시, 저녁 8시면 홀어머니에게 전화를 한다. 하루도 거르지 않고 전화를 하다 보니, 어머니 음성만 들어도 심신의 상태를 귀신같이 알 수 있다.
“괜찮다. 나는 잘 있다.”
매번 같은 대답을 하시는 어머니지만, 전화 목소리가 이상하다 싶으면 그는 만사를 제쳐놓고 즉시 달려간다. 그 분은 남몰래 전화 한 통화로 효를 실행하고 있었다. 나는 부모와 조상을 위하지 않고 자수성가했다고 자만한 부자가 오래 가는 걸 보지 못했다.
마음이 복 밭이라고 했다. 이렇게 노력하는데 왜 나는 허덕이는가 한탄하기 이전에 자기를 한번 되돌아보는 것도 부자 되는 지름길 중에 하나다. 혹시나 복을 저금하지도 않고 통장이 비었다고 은행을 원망할 수도 있으니까.(hoo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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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버는 사람은 따로 있을까. 부자는 타고난 것일까. 노력과 비례하지 않는 이 사회는 정녕 불공평한 세상일까.
70년대 내가 동대문상가에서 목격한 일이다. 상가 여러 개를 소유한 억척스런 여사장이 있었다. 여사장은 인정사정이 없었다. 세입자가 조금이라도 세를 밀리면 가차 없이 상가를 비우게 했다. 오일쇼크로 극심한 불황이 닥쳤다.
상가 세입자들이 제때 월세를 내지 못하게 되었다. 역시나 여사장은 눈 하나 꿈쩍하지 않고 세입자를 몰아냈다.
“저 여자는 바늘로 찔러도 피한방울 안 나올 겨.”
“피가 뭐야, 눈물도 없다니까.”
“하늘은 뭐하나 몰라. 저런 사람이 부자라니 말이야.”
여사장의 지독한 돈 탐에 다들 혀를 내둘렀다.
하지만 여사장에겐 남들이 모르는 사실이 있었다. 그녀는 천하에 둘도 없는 효녀였다. 아침, 저녁으로 아버지 이부자리를 봐드리고, 먹고 싶다는 음식이 있으면 무슨 짓을 해서라도 구해왔다. 아버지를 직접 수발하는 일을 한 번도 거른 적이 없었다.
그러 어느 날 일이 터졌다. 아버지가 몸 져 누운 것이다. 아버지가 딸을 만나로 잠시 출타했다가 돌아온 직후였다. 무슨 일이 있었을까.
여사장은 걱정스런 눈으로 병상의 아버지를 간호했다. 하지만 아버지는 한마디 말도 없었다.
“아버지 무슨 일이세요? 말씀을 하세요?”
딸과는 그렇게 스스럼없이 터놓고 이야기를 나누던 아버지였지만 한 마디 말없이 입을 꼭 다물었다. 영문을 모르는 여사장은 애가 탔지만 아버지는 돌아누울 뿐이었다.
답답한 침묵의 며칠이 지나고 아버지가 드디어 입을 열었다.
“이제는 생각을 다시 해야겠다. 그렇게 번 돈으로 하는 효도는 달갑지 않다.”
아버지가 누운 건 딸을 만나러 동대문 상가에 갔다 온 직후였다. 상가 벽에 써 있는 구호 낙서들을 보고 깜짝 놀란 것이다.
“00여사장은 물러가라.”
“악덕 상가주인 00을 몰아내자.”
여사장이 하도 악랄하게 굴자 상가 세입자들이 들고 일어나서 시위를 했던 것이다.
여사장은 당장 상가로 달려갔다. 그리고 상가 사람들에게 전했다. ‘지금까지 밀린 세는 받지 않을 것’이라고 선포했다. 집에 돌아온 여사장은 아버지에게 그 소식을 전했다. 그제야 아버지는 병석을 털고 일어났다.
사람들은 여사장을 천하의 악질이라고 욕을 해댔다. 하지만 그녀는 아버지에겐 둘도 없는 효녀였다. 남의 마음을 아프게 한 일은 그 일대로 과보로 받겠지만, 효심 또한 부자로서의 필연적으로 과보인 것은 아닐까.
남들은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잘 살펴보면 부자는 겉보기와는 다른 숨겨놓은 무언가 한 수가 반드시 있다. 내가 아는 한 분도 그랬다.
그렇게 소문난 부자이면서도 수십 년 입은 양복 깃은 다 해져있고, 설렁탕으로 한 끼를 때울 정도로 인색한 구두쇠다. 주변 사람들이 다 손을 내저을 정도다. 게다가 마누라에겐 잘하면서 늙은 홀어머니와는 따로 살고 있다. 누가 봐도 효도와는 거리가 먼 인물처럼 보인다.
그러나 실상은 그렇지 않다. 고부갈등으로 모시고 살지는 못하지만, 매일 아침 9시, 저녁 8시면 홀어머니에게 전화를 한다. 하루도 거르지 않고 전화를 하다 보니, 어머니 음성만 들어도 심신의 상태를 귀신같이 알 수 있다.
“괜찮다. 나는 잘 있다.”
매번 같은 대답을 하시는 어머니지만, 전화 목소리가 이상하다 싶으면 그는 만사를 제쳐놓고 즉시 달려간다. 그 분은 남몰래 전화 한 통화로 효를 실행하고 있었다. 나는 부모와 조상을 위하지 않고 자수성가했다고 자만한 부자가 오래 가는 걸 보지 못했다.
마음이 복 밭이라고 했다. 이렇게 노력하는데 왜 나는 허덕이는가 한탄하기 이전에 자기를 한번 되돌아보는 것도 부자 되는 지름길 중에 하나다. 혹시나 복을 저금하지도 않고 통장이 비었다고 은행을 원망할 수도 있으니까.(hoo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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