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정주영 다시 읽기…"이봐, 화장할 돈 있으면 집부터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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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위기? 나 이길 수 있어?|박명훈 지음|청조사|230쪽|1만1800원
"위기는 기회다. 금융 불안이 실물경제 쪽으로 번져가는 상황에선 더욱 그렇다. 조선업을 하던 현대가 자동차 산업에 진출했을 때 불황이라고 모두가 말렸지만 정주영 회장은 오히려 더 좋은 기회라고 말했었다.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 멘델 교수)
"정주영 회장은 5%의 데이터와 95%의 직관력으로 기업을 경영해 성공했다. "(윤종용 삼성전자 고문)
지금 왜 또다시 정주영인가. 8년 전 세상을 떠난 그가 새삼 국내외 경제인과 매스컴으로부터 재조명을 받는 이유는 뭘까. 그의 기업가 정신,도전 의지,위기 돌파 능력이 여전히 생명력을 지니고 있고 그러한 긍정적 요소들이 글로벌 경제의 위기라는 현 상황과 맞물려 진가를 인정받았기 때문일 것이다.
《경제위기? 나 이길 수 있어?》는 정주영의 인간적 매력,즉 소프트 파워에 주목했다. 경영 자질이 뛰어난 기업인,올림픽을 유치한 체육인,대통령에 도전한 정치인,소떼를 몰고 38선을 넘은 통일꾼이라는 다양한 개인적 스펙트럼 속에 숨어 있는 '삽화'들을 모았다.
정 회장 생전의 육성과 따스한 스킨십,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진솔한 체취의 전달은 건조한 일대기나 전기가 아닌 '감동이 있는 이야기'로서 무리가 없다. 낡은 와이셔츠 깃을 바꿔 달아 입고 구두에 징을 박아 10여년씩 신고 다닌 '부유한 노동자'의 면면이 현장기자 출신인 저자의 매끄러운 글솜씨 속에서 온전하다.
"1980년 8월 전경련회관 2층 기자실.악수를 끝낸 정 회장이 갑자기 허리띠를 풀기 시작했다. 도대체 무슨 일일까 생각하는데 이번엔 바지를 무릎까지 쭈욱 내려버리는 것이었다. 그것도 단숨에.그의 사각 팬티가 정면에 클로즈업되자 기자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입구에는 여직원까지 앉아 있는데… 모두들 눈길을 낮추었을 때 나는 다시 한번 놀랐다. 왼쪽 허벅지 안쪽이 말 그대로 시커멓게 죽어 있는 게 아닌가. "
단단한 허벅다리 근육에 더욱 놀라고,당시 66세 할아버지가 20대 신입 사원과 씨름하다가 그렇게 됐다는 데 어안이 벙벙해졌다는 저자의 회고다.
'백 마디 말보다 보여주고 만져보게 하는 게 가장 확실한 설명'이라는 정 회장의 캐릭터를 상징하는 해프닝 아닌 해프닝이었던 셈이다. 정 회장은 실제 학점이나 입사 시험 성적보다 건강과 활달한 추진력 여부를 신입사원 채용의 기준으로 삼았다고 한다.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그의 근검절약 정신은 거의 본능적이다. '식사 인원 ????명=불고기 ????인분'이 공식이었던 대중 식당에서의 소탈한 점심은 그야말로 양반.직원들에게 '담배 연기로 월급을 날려 보내지 마라,얼굴에 돈을 바르지 마라(화장),그럴 돈이 있으면 집부터 장만하라'고 입버릇처럼 외쳤다고 한다.
씨줄 날줄로 엮은 정치 · 경제계 비사도 흥미진진하다. 5공에 예기치 않은 카운터 펀치를 날린 전경련의 정 회장 재추대,'담배 수입은 미국 압력에 의한 것이라고 쓰지 말 것,야권 지도자의 사진을 싣지 말고 해설도 안됨' 등 당시 정부의 보도지침 내용,숨막히는 애증의 관계이면서도 없으면 서로 쓸쓸할 것 같았던 이병철 회장과의 신경전 그리고 신격호 김우중 최종현 회장과의 영욕의 시간들이 눈길을 잡는다.
일을 떠나서는 하루도 살 수 없었던 정 회장.그래서인지 건강한 신체를 누구보다 중요시했던 새벽형 인간.참담한 출생 환경을 딛고 일어선 불굴의 전도사가 지구촌 최대의 경제 위기라는 지금의 한국인에게 던지는 메시지는 지극히 단순하다. "두려워하지 마십시오.성공과 실패는 내 안에 있습니다. 초심을 지키고 절대 꿈을 포기하지 마십시오."
김홍조 편집위원 kiruki@hankyung.com
"정주영 회장은 5%의 데이터와 95%의 직관력으로 기업을 경영해 성공했다. "(윤종용 삼성전자 고문)
지금 왜 또다시 정주영인가. 8년 전 세상을 떠난 그가 새삼 국내외 경제인과 매스컴으로부터 재조명을 받는 이유는 뭘까. 그의 기업가 정신,도전 의지,위기 돌파 능력이 여전히 생명력을 지니고 있고 그러한 긍정적 요소들이 글로벌 경제의 위기라는 현 상황과 맞물려 진가를 인정받았기 때문일 것이다.
《경제위기? 나 이길 수 있어?》는 정주영의 인간적 매력,즉 소프트 파워에 주목했다. 경영 자질이 뛰어난 기업인,올림픽을 유치한 체육인,대통령에 도전한 정치인,소떼를 몰고 38선을 넘은 통일꾼이라는 다양한 개인적 스펙트럼 속에 숨어 있는 '삽화'들을 모았다.
정 회장 생전의 육성과 따스한 스킨십,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진솔한 체취의 전달은 건조한 일대기나 전기가 아닌 '감동이 있는 이야기'로서 무리가 없다. 낡은 와이셔츠 깃을 바꿔 달아 입고 구두에 징을 박아 10여년씩 신고 다닌 '부유한 노동자'의 면면이 현장기자 출신인 저자의 매끄러운 글솜씨 속에서 온전하다.
"1980년 8월 전경련회관 2층 기자실.악수를 끝낸 정 회장이 갑자기 허리띠를 풀기 시작했다. 도대체 무슨 일일까 생각하는데 이번엔 바지를 무릎까지 쭈욱 내려버리는 것이었다. 그것도 단숨에.그의 사각 팬티가 정면에 클로즈업되자 기자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입구에는 여직원까지 앉아 있는데… 모두들 눈길을 낮추었을 때 나는 다시 한번 놀랐다. 왼쪽 허벅지 안쪽이 말 그대로 시커멓게 죽어 있는 게 아닌가. "
단단한 허벅다리 근육에 더욱 놀라고,당시 66세 할아버지가 20대 신입 사원과 씨름하다가 그렇게 됐다는 데 어안이 벙벙해졌다는 저자의 회고다.
'백 마디 말보다 보여주고 만져보게 하는 게 가장 확실한 설명'이라는 정 회장의 캐릭터를 상징하는 해프닝 아닌 해프닝이었던 셈이다. 정 회장은 실제 학점이나 입사 시험 성적보다 건강과 활달한 추진력 여부를 신입사원 채용의 기준으로 삼았다고 한다.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그의 근검절약 정신은 거의 본능적이다. '식사 인원 ????명=불고기 ????인분'이 공식이었던 대중 식당에서의 소탈한 점심은 그야말로 양반.직원들에게 '담배 연기로 월급을 날려 보내지 마라,얼굴에 돈을 바르지 마라(화장),그럴 돈이 있으면 집부터 장만하라'고 입버릇처럼 외쳤다고 한다.
씨줄 날줄로 엮은 정치 · 경제계 비사도 흥미진진하다. 5공에 예기치 않은 카운터 펀치를 날린 전경련의 정 회장 재추대,'담배 수입은 미국 압력에 의한 것이라고 쓰지 말 것,야권 지도자의 사진을 싣지 말고 해설도 안됨' 등 당시 정부의 보도지침 내용,숨막히는 애증의 관계이면서도 없으면 서로 쓸쓸할 것 같았던 이병철 회장과의 신경전 그리고 신격호 김우중 최종현 회장과의 영욕의 시간들이 눈길을 잡는다.
일을 떠나서는 하루도 살 수 없었던 정 회장.그래서인지 건강한 신체를 누구보다 중요시했던 새벽형 인간.참담한 출생 환경을 딛고 일어선 불굴의 전도사가 지구촌 최대의 경제 위기라는 지금의 한국인에게 던지는 메시지는 지극히 단순하다. "두려워하지 마십시오.성공과 실패는 내 안에 있습니다. 초심을 지키고 절대 꿈을 포기하지 마십시오."
김홍조 편집위원 kiruk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