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월8일 웨르너 파이만 오스트리아 수상 관저에 조지프 프롤 재무장관 등 정부 인사와 자동차업계 CEO(최고경영자)들이 모였다. 논의 안건은 단축근무 인력에 대한 정부 지원책과 자동차산업 구제를 위한 태스크포스 구성 및 자금 지원 등이었다. 3시간에 걸친 마라톤 협의 끝에 합의가 도출됐고 곧바로 부처 간 협의 및 법령 개정을 거쳐 시행에 들어갔다. 글로벌 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오스트리아 정부는 모든 절차를 간소화해 신속한 조치를 내놓은 것이다.

극도의 부진에 빠진 자동차 시장을 살리기 위한 정부 차원의 지원은 비단 오스트리아뿐 아니라 다른 서유럽 국가들도 발빠르게 나서고 있다. 독일은 구입한 지 9년 이상된 차량을 폐기처분하고 신차를 구입할 경우 정부가 2500유로(480만원)를 지원해 주고 있다. 이 제도가 도입된 직후 신차 구입 신청이 쇄도,지난 2월 판매량이 전년 동월 대비 22%나 증가했다.

지난해 12월 서유럽 국가 가운데 처음으로 신차 구입 보조금제를 도입한 프랑스는 1000유로(191만원)를 지급하고 있다. 이탈리아 역시 기존 차량을 폐차하고 새 차를 살 경우 1500유로(300만원)를 준다. 지난해 말부터 올 4월까지 신차 구입 보조금 지급에 나선 서유럽 국가는 모두 7개 국가에 달하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같은 어려움을 겪고 있는 한국은 어떨까?지난달 9일 지식경제부가 국회 지식경제위원회와의 간담회에서 자동차산업 활성화 방안을 논의했다고 발표한 뒤로 이렇다 할 추가조치는 나오지 않고 있다. 늘 그랬듯이 운만 떼 놓고 후속 조치가 없다보니 오히려 차량 구매자들의 '혹시나'하는 심리를 자극해 대기 수요를 더 늘리는 부작용만 발생하고 있다. 지원 방안들이 예산과 연계될 수밖에 없다보니 기획재정부 등 다른 부처와의 협의가 잘 이뤄지지 않고,결국 담당부처만 끙끙 앓다가 포기해 버리는 상황이 되풀이되고 있는 것이다.

국내 자동차 시장은 겉보기엔 지난해와 비슷한 수준을 유지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10년 전 외환위기 때보다 더 어려운 상황에 빠져있다. 환차익을 노린 신차의 해외 불법유출이 횡행하고 있고 이로 인해 신차 유통질서가 급격히 붕괴되고 있다. 자동차 영업사원들은 내수판매보다는 마진율 좋은 해외 불법 유출에 더 관심을 보이고 있으며,이 때문에 자동차업체 직원들이 인천항 등 주요 항만에 나가 불법유출 감시에 나서는 등 웃지 못할 현상까지 벌어지고 있다. 지난달 해외로 팔려나간 신차를 제외한 순수 국내 신차 판매량은 대략 7만8000여대 정도로 추산된다. 이는 1998년과 비슷한 수준이다.

내수시장 붕괴는 어렵게 유지해온 국산차 업체들의 경쟁력의 근간을 뿌리째 흔들 수도 있다. 이러한 위기 상황에서는 정부가 보다 신속하고도 강단있는 정책을 펴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한결 같은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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