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식 경영'이 유행한 적이 있었다. 1980년대 GM 제록스 웨스팅하우스 등 미국 기업들이 도요타 캐논 소니 등 일본 기업들에 의해 무너지기 시작하자 전 세계는 일본 기업의 경영방식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평생 고용에서 전사적 품질운동,협력업체 관리,도요타 생산방식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일본식 기법들은 새로운 경영방식의 모범 사례로 확산됐다.

그러나 1990년대 버블경제가 붕괴되면서 일본 기업들은 장기 불황에 빠졌고 불패신화도 깨졌다. 글로벌 시대에 경영방식의 국적을 논하는 것 자체가 모순일 수 있다. 미국식이건,일본식이건 경영성과를 향상시키는 데 도움이 된다면 적극 활용하면 그만이다. 다만 어떤 기법을 도입하건 그 원리를 제대로 파악하는 것은 필수적이다. 원리를 이해하지 못하고 껍데기만 빌려오면 적용에서 문제가 생길 수 있다.

이런 측면에서 '지식창조기업'은 일본식 경영의 근본원리를 지식이라는 화두를 통해 풀어낸 역작이다. 저자인 히토츠바시대의 노나카,다케우치 두 교수는 근로자를 협상과 통제의 대상으로 본 서구 기업과 달리 지식의 원천이자 자산으로 인식했다. 또 지식의 유형을 크게 형식지(形式知)와 암묵지(暗默知)로 구분하고,이 중에서도 구체적인 언어로 설명하기 힘들지만 개인적인 경험에 내재해 있는 암묵적 지식을 기업 혁신의 원천으로 간주했다.

이들은 경영자가 아이디어를 내면 종업원들은 상사의 생각을 실행하는 것이 아니라,종업원들이 아이디어를 내고 경영자는 그들이 많은 제안을 할 수 있도록 여건을 조성하면서 제안한 아이디어를 적극 활용해야 한다고 충고했다. 책에 소개되는 캐논의 저가 복사기나 혼다의 신차 개발 성공 사례를 보면 결국 최고경영진의 탁월한 안목보다는 현장 연구원들의 끊임없는 시행착오 끝에 나온 아이디어가 성공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처럼 일본 기업들이 전 세계적으로 확산시켰던 대표적인 경영이론이나 기법들은 한결같이 현장에서 체득한 종업원들의 아이디어를 중시했다. 경기 불황이면 항상 인력 구조조정이나 조직 통폐합이 화두가 되지만,진정한 기업 경쟁력의 원천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심각한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다.

이동현 가톨릭대 경영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