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9년 9월 독일이 폴란드를 침공한 후 10대 소년인 그는 숱한 고초를 겪기 시작했습니다. 겁 없이 바르샤바의 유대인 거주구역(게토) 담을 넘어다니며 식품 밀수로 살아가던 그는 결국 바르샤바 인근의 트레블린카 수용소에 갇히고 말지요.

'유대인 멸절 수용소'로 불리던 트레블린카에서 그는 어머니와 두 동생을 잃고 시체들을 무덤 구덩이로 나르는 일을 하면서 근근이 생명을 부지하다 탈출에 성공합니다.

1943년 수만 명의 사상자를 낸 바르샤바 게토 봉기에서 아버지마저 잃은 뒤 그는 복수를 위해 파르티잔이 되지요.

러시아와 폴란드 지하 저항단체에 합류해 나치 잔당 제거 작업에 나선 그는 어느 날 '나 자신이 살육자가 되는 일은 결코 없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고 미국으로 향합니다.

그러나 운명의 장난일까요. 미국에서 골동품 무역회사를 세워 성공하고 네 자녀와 행복한 시간을 보내던 그에게 또 다른 불행이 닥쳤습니다. 1970년 마을에 일어난 산불로 전 가족이 숨진 것입니다.

모든 것을 포기한 그는 자살을 결심합니다. 그러나 그는 죽음 대신 살아남아 자신의 경험을 글로 남김으로써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기로 마음을 바꿨습니다.

'나는 행복함과 잔혹함,삶과 죽음을 다 경험했다. 자신의 눈으로 살육자들과 인간들 사이에서는 어떤 일이든 벌어질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됐고 하나의 게토를 파괴하면 또 다른 게토가 생겨난다. (중략) 살아내고 끝까지 버텨내면 언젠가는 다시 새로운 생명이 태어나 나의 죽음과 내 가족의 죽음을 보상해 우리의 생명을 영원히 이어가게 되는 그런 날이 올 것이다. 인간이 살아가는 한 누군가가 남아서 내가 사랑한 사람들을 위해 그 이야기를 전하고 증인이 돼 줄 그런 날이 올 것이다. '

그의 이름은 마르틴 그레이입니다. 그는 《살아야 한다,나는 살아야 한다》(21세기북스 펴냄)에서 '아무리 어려워도 살아남아야 하는 이유'를 역설합니다.

그의 메시지는 죽음보다 더 깊은 희망의 뿌리에 닿아있습니다. 그것은 이 책이 26개 언어로 번역돼 3000만부 이상 팔린 이유이기도 합니다.

고두현 문화부 차장 kd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