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저가' 열연강판 등장…철강업계도 치킨게임 시작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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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수요 줄고 재고 늘어 제품가격 지속 하락
경쟁력 약한 동유럽ㆍ중앙亞 업체 이미 한계상황
경쟁력 약한 동유럽ㆍ중앙亞 업체 이미 한계상황
이달 초 철강시장에는 t당 300달러대의 '초저가' 열연강판이 매물로 나왔다. 품질이 떨어지는 우크라이나 제품이라는 것을 감안해도 너무 싼 가격이었다. 철강제품 가격하락을 주도했던 중국의 열연강판보다도 40% 이상 낮은 수준.철강업체들은 긴장했다. 덤핑 수준의 철강제품이 쏟아질 경우 '공멸' 우려가 높아지기 때문이다.
철강제품의 가격 하락세가 멈추지 않고 있다. 한꺼번에 너무 많이 하락한 탓에 최근 들어 소폭 반등한 제품도 있지만 예외적인 케이스다. 철강 수요가 살아나지 않으면 답이 없다. 감산과 원가절감으로 버텨내는 데는 한계가 있다. 막다른 궁지에 몰린 철강업체 몇곳이 '출혈 경쟁'이라는 마지막 승부수를 던지는 순간,불길은 전 업계로 번지게 된다. 철강시장은 지금 '치킨 게임'의 문턱에 서 있다.
◆힘빠진 철강가격
일본 최대 철강업체인 신일본제철은 최근 건설용 강재의 주력제품인 H형강 가격을 t당 4만엔(약 30%) 인하했다. 회사측은 "글로벌 경기둔화 여파로 철강수요가 감소한데다 경쟁사에 비해 다소 높게 설정돼 가격을 내렸다"고 인하배경을 설명했다. 신일본제철이 H형강 가격을 떨어뜨린 것은 2005년 8월 이후 3년 6개월만에 처음이다.
신일본제철은 당초 올해 생산량을 전년 대비 15%(500만t)가량 줄이는 초강수를 통해 경기침체에 대응할 요량이었지만 시황 악화가 장기화하면서 전략이 틀어졌다. 재고가 예상보다 빠르게 늘어나 결국 가격인하 카드를 꺼내들 수밖에 없었다.
국내 업체들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현대제철은 작년 11월 이후 두 차례에 걸쳐 철근 가격을 t당 10만원씩 내렸다. H형강은 같은 기간 t당 119만원에서 97만원으로 22만원 인하했다. 동국제강은 지난달 19일 후판(厚板) 값을 t당 141만원에서 116만원으로 25만원 떨어뜨렸다. 이 회사가 후판 값을 내린 것은 2년여 만에 처음이다.
작년 12월 이후 3개월째 감산체제에 들어간 포스코 역시 수출 부문에서'박리다매' 전략을 펴고 있다. 물량만 잡으면 가격은 불문이라는 영업지침까지 내려보낸 것으로 알려졌다. 포스코 관계자는 "전 세계적인 사회인프라 투자 기대 등으로 일부 국가의 철강제품이 소폭 반등하고 있지만 일시적일 것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라며 "올 상반기 중에 바닥이라도 확인할 수 있으면 다행"이라고 말했다.
그나마 한국과 일본 미국 등은 고정 거래처가 많고 생산성이 높아 사정이 나은 편이다. 문제는 동유럽과 중앙아시아에 걸쳐 있는 옛 소련 지역이다. 철강업체 관계자는 "국가 부도 우려가 높아지고 있는 이 지역 국가들의 철강업체들은 이미 한계상황에 몰려 있다"며 "치킨 게임이 본격화할 경우 출발점은 동유럽과 중앙아시아가 될 공산이 크다"고 내다봤다.
◆철강업체간 이합집산 시작되나
가격인하 경쟁이 불붙으면 경쟁력이 약한 철강사부터 부도 위험에 몰리게 된다. 철강회사간 대형 기업 인수 · 합병(M&A)이 시작될 수 있는 터전이 마련되는 셈이다. 게다가 주요 철강업체들의 몸값도 바닥으로 떨어졌다. 시황 악화로 주가가 급락했기 때문이다.
아르셀로미탈의 't당 시가총액(시가총액을 조강생산량으로 나눈 것)'은 작년 6월 말 1210달러에서 이달 중순에는 300달러대 초반으로 급락했다. US스틸 역시 같은 기간 999달러에서 168달러로 83% 내려앉았고 티센크루프도 1572달러에서 700달러대로 떨어졌다. 동유럽 등에 흩어져 있는 중소형 제철소들은 상황이 더욱 심각하다. 제철소를 새로 짓는 것보다 M&A를 통해 기존 설비를 인수하는 것이 훨씬 경제적인 상황이 도래한 것이다.
문제는 얼마나 현금 동원력이 있느냐는 것.철강협회에 따르면 세계 주요 철강회사 가운데 현금성 자산에서 장 · 단기 차입금을 뺀 '순현금'이 플러스인 곳은 포스코가 유일하다. 게다가 차입금의 80% 이상은 만기가 긴 장기 차입금이다. 이에 비해 아르셀로미탈은 현금성 자산보다 차입금이 325억달러나 많고 티센크루프 바오산강철 US스틸 신일본제철 등 대부분의 철강회사도 순현금이 수십억달러의 마이너스 상태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포스코는 다른 철강사들에 비해 차입을 통해 자금을 조달할 수 있는 여력이 훨씬 크다"며 "공격적인 M&A가 위기를 기회로 바꾸는 전략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안재석 기자 yagoo@hankyung.com
철강제품의 가격 하락세가 멈추지 않고 있다. 한꺼번에 너무 많이 하락한 탓에 최근 들어 소폭 반등한 제품도 있지만 예외적인 케이스다. 철강 수요가 살아나지 않으면 답이 없다. 감산과 원가절감으로 버텨내는 데는 한계가 있다. 막다른 궁지에 몰린 철강업체 몇곳이 '출혈 경쟁'이라는 마지막 승부수를 던지는 순간,불길은 전 업계로 번지게 된다. 철강시장은 지금 '치킨 게임'의 문턱에 서 있다.
◆힘빠진 철강가격
일본 최대 철강업체인 신일본제철은 최근 건설용 강재의 주력제품인 H형강 가격을 t당 4만엔(약 30%) 인하했다. 회사측은 "글로벌 경기둔화 여파로 철강수요가 감소한데다 경쟁사에 비해 다소 높게 설정돼 가격을 내렸다"고 인하배경을 설명했다. 신일본제철이 H형강 가격을 떨어뜨린 것은 2005년 8월 이후 3년 6개월만에 처음이다.
신일본제철은 당초 올해 생산량을 전년 대비 15%(500만t)가량 줄이는 초강수를 통해 경기침체에 대응할 요량이었지만 시황 악화가 장기화하면서 전략이 틀어졌다. 재고가 예상보다 빠르게 늘어나 결국 가격인하 카드를 꺼내들 수밖에 없었다.
국내 업체들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현대제철은 작년 11월 이후 두 차례에 걸쳐 철근 가격을 t당 10만원씩 내렸다. H형강은 같은 기간 t당 119만원에서 97만원으로 22만원 인하했다. 동국제강은 지난달 19일 후판(厚板) 값을 t당 141만원에서 116만원으로 25만원 떨어뜨렸다. 이 회사가 후판 값을 내린 것은 2년여 만에 처음이다.
작년 12월 이후 3개월째 감산체제에 들어간 포스코 역시 수출 부문에서'박리다매' 전략을 펴고 있다. 물량만 잡으면 가격은 불문이라는 영업지침까지 내려보낸 것으로 알려졌다. 포스코 관계자는 "전 세계적인 사회인프라 투자 기대 등으로 일부 국가의 철강제품이 소폭 반등하고 있지만 일시적일 것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라며 "올 상반기 중에 바닥이라도 확인할 수 있으면 다행"이라고 말했다.
그나마 한국과 일본 미국 등은 고정 거래처가 많고 생산성이 높아 사정이 나은 편이다. 문제는 동유럽과 중앙아시아에 걸쳐 있는 옛 소련 지역이다. 철강업체 관계자는 "국가 부도 우려가 높아지고 있는 이 지역 국가들의 철강업체들은 이미 한계상황에 몰려 있다"며 "치킨 게임이 본격화할 경우 출발점은 동유럽과 중앙아시아가 될 공산이 크다"고 내다봤다.
◆철강업체간 이합집산 시작되나
가격인하 경쟁이 불붙으면 경쟁력이 약한 철강사부터 부도 위험에 몰리게 된다. 철강회사간 대형 기업 인수 · 합병(M&A)이 시작될 수 있는 터전이 마련되는 셈이다. 게다가 주요 철강업체들의 몸값도 바닥으로 떨어졌다. 시황 악화로 주가가 급락했기 때문이다.
아르셀로미탈의 't당 시가총액(시가총액을 조강생산량으로 나눈 것)'은 작년 6월 말 1210달러에서 이달 중순에는 300달러대 초반으로 급락했다. US스틸 역시 같은 기간 999달러에서 168달러로 83% 내려앉았고 티센크루프도 1572달러에서 700달러대로 떨어졌다. 동유럽 등에 흩어져 있는 중소형 제철소들은 상황이 더욱 심각하다. 제철소를 새로 짓는 것보다 M&A를 통해 기존 설비를 인수하는 것이 훨씬 경제적인 상황이 도래한 것이다.
문제는 얼마나 현금 동원력이 있느냐는 것.철강협회에 따르면 세계 주요 철강회사 가운데 현금성 자산에서 장 · 단기 차입금을 뺀 '순현금'이 플러스인 곳은 포스코가 유일하다. 게다가 차입금의 80% 이상은 만기가 긴 장기 차입금이다. 이에 비해 아르셀로미탈은 현금성 자산보다 차입금이 325억달러나 많고 티센크루프 바오산강철 US스틸 신일본제철 등 대부분의 철강회사도 순현금이 수십억달러의 마이너스 상태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포스코는 다른 철강사들에 비해 차입을 통해 자금을 조달할 수 있는 여력이 훨씬 크다"며 "공격적인 M&A가 위기를 기회로 바꾸는 전략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안재석 기자 yag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