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들의 일자리를 지켜주기 위한 정부의 노력이 눈물겹다.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은 취임 일성으로 "정책의 최우선 방향을 일자리 창출에 두겠다"고 했고,이윤호 지식경제부 장관은 "외환위기 당시의 금모으기와 같은 국민 운동 차원으로 잡 셰어링(일자리 나누기)을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공기업과 은행들에 임금삭감을 통한 잡 셰어링을 지침으로 내려보낸 데 이어 민간기업들의 참여를 이끌어 내기 위한 정책도 쏟아내고 있다. 임금을 깎아 고용을 유지하는 기업들에 삭감된 임금의 50%를 세금 공제해주겠다는 정책도 내놨다.

일자리에 정부의 신경세포가 온통 쏠리다보니 앞뒤 안 맞는 모순된 정책이 양산되고 있다는 비판도 나오지만,거기에 신경 쓸 여유조차 없어보인다. 공기업 인력을 향후 3~4년간 13% 줄이겠다던 공기업 선진화 정책이 '잡 셰어링 솔선수범'으로 바뀐 게 단적인 예다. 헷갈려하는 공기업들에 신입사원들의 임금을 대폭 깎아 일자리를 늘리되,신규 채용 인원은 '청년 인턴'으로 국한하라는 '묘안'을 내려보냈다.

임시직만 잔뜩 양산해 사회적 양극화를 심화시키는 것 아니냐는 지적에 대한 정부의 답은 "지금이 일자리의 질(質)을 따질 때냐"는 것이다. "올해 대학에서 50만명이 쏟아져 나오는데 나쁜 일자리라도 제공해야 한다"는 말도 나왔다.

거친 표현조차 마다하지 않을 정도로 일자리에 대해 정부가 느끼는 위기감은 심각하다. 지난 1월 취업자 수가 10만3000명이나 줄어든 건 특히 충격적이었다.

하지만 다급하다고 해서 '질보다는 양(量)'을 밀어붙이는 일자리 정책이 가져올 후유증마저 외면해서는 안 된다.

정부가 공공기관 등을 동원해 양산하고 있는 청년인턴제도는 특히 정교한 보완이 필요하다. 최근 1년 새 3배 가까이 늘어나 10만명에 육박한 청년인턴직은 10개월 안팎의 한시직이다. 올 연말이면 고스란히 실업자로 다시 우리 사회에 쏟아져나올 수밖에 없다. 이들이 제대로 된 일자리를 찾을 수 있게끔 직무훈련을 제공하지 않는다면 사회적 박탈감만 증폭시킬 게 뻔하다. 복사 심부름같은 허드렛일이 대부분이라는 불평을 흘려들어선 안된다.

매출이 뚝 떨어져 휴업을 되풀이하고 있는 기업들에까지 기존 일자리를 줄이지 말고,임금 삭감을 통해 일자리를 나누라는 요구도 본말을 전도할 우려가 크다. "10명이 할 일을 12명에게 월급을 공유시켜 맡도록 하는 일은 난센스"라는 어느 대기업 CEO(최고경영자)의 말처럼 조직 전체를 느슨하게 만들어 중 · 장기적인 기업경쟁력을 떨어뜨리는 악수(惡手)로 작용하기 십상이다. 기업들의 즉각적인 투자확대로 연결될 수 있는 규제완화를 서둘러서 생산적인 '일자리 창출'이 이뤄지게끔 정책의 고삐를 죄어야 한다.

1990년대 초반 독일의 폭스바겐이 노동시간 단축과 임금삭감을 통한 일자리 나누기로 경제위기의 고비를 넘긴 '모범사례'가 거론되지만,그게 가능하도록 대타협에 동참했던 노조의 양보와 유연한 고용제도 역시 시급하다. 판매 부진으로 재고가 쌓이는 와중에서도 '근로시간 보장,따라서 임금도 보장'을 요구하는 거대 노조들의 따로 놀기가 방치되는 상황에선 '나쁜 일자리'를 뛰어넘는 고용의 선순환을 기대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