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2일 밀레니엄 서울 힐튼호텔의 프랑스 레스토랑 '시즌즈'에서 만난 박효남 총주방장(상무 · 48)은 자신의 요리에 대한 자부심을 이같이 표현했다.
프랑스인들도 솜씨를 인정하는 박 상무는 1983년 남산 힐튼호텔 창립 멤버로 참여,지금까지 이 호텔의 맛을 책임지고 있는 호텔의 '어머니' 같은 존재다.
1990년 한국인 최초로 싱가포르 세계요리대회에서 금상을 받았고,38세이던 1999년 대우그룹 최연소 임원에 올라 화제가 되기도 했다. 지금은 웨스틴 조선호텔 이민 상무,신라호텔 후덕주 상무와 함께 '국내 3대 셰프'로 꼽힌다.
박 상무가 최고의 요리사 반열에 오를 수 있었던 비결은 '고집'과 '허기'로 요약된다.
무엇보다 그는 '한국적인 프랑스 요리'를 강조한다. "프랑스 음식은 크림 버터를 많이 사용해 느끼하기 때문에 이를 억제하고 매콤한 맛 등을 가미합니다. 프랑스 요리의 기본 틀은 유지하되 한국인 입맛에 맞는 요리를 만들어야 고객들이 다시 찾습니다. "
또한 요리사의 솜씨는 '허기'에서 나온다는 게 그의 오랜 지론이다. 박 상무는 "요리사가 배고픈 상태여야 오감이 예민해지면서 풍부한 향과 맛을 만들어내기 쉽다"며 "이는 좋은 요리사가 되기 위한 가장 기본적인 비법"이라고 소개했다.
그래서 '시즌즈'의 요리사들은 모두 고객들의 식사가 끝난 뒤에야 식사하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강원도 고성에서 태어나 중학교에 진학하면서 상경한 박 상무의 가족은 연탄집을 했다.
하교 후엔 항상 부모님을 도와 연탄을 배달해야 했다. 고생하는 부모님을 보며 '빨리 돈을 벌어야겠다'고 결심해 고교 진학을 포기하고 1978년 종로5가 수도요리학원에 들어갔다.
"같은 해 조리사 면허증을 땄고 9월 그랜드 하얏트호텔에 원년 멤버로 입사했습니다. 입사 3개월 만에 레스토랑 '휴고'의 스위스인 주방장이 절 잘봤는지 데려갔죠.이후 5년 동안 프랑스 요리를 공부했습니다. "
'한곳에만 있으면 우물 안 개구리가 된다'는 생각이 든 박 상무는 23세이던 1983년 '시즌즈'에 개장하면서 자리를 옮겼다.
"새로운 요리를 배우고 연구하는 것이 즐거워 밤이 새는 줄도 모르고 요리를 했습니다. 그 버릇이 아직까지 남아 아직도 매달 3~4권의 요리책을 보며 공부합니다. "
밀레니엄 서울 힐튼호텔은 올해 25주년 플래카드를 내걸었다. 지난해 12월7일이 25주년이었지만 강호AMC에 인수되는 문제로 분위기가 어수선해 올해로 미뤄진 것.
직원들이 흔들릴 때 박 상무는 "배가 흔들린다고 선원들이 동요하면 손님은 바다에 뛰어내린다"며 서비스에 최선을 다하자고 다독였다.
26년간 호텔을 묵묵히 지켜낸 그에게 '은퇴 후 뭘 할거냐'고 질문하자 손사래를 쳤다. "항상 힐튼을 제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주인이 어떻게 은퇴합니까?(웃음)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한적한 곳에 제 이름을 걸고 10명이 둘러앉는 작은 레스토랑을 열 생각입니다. 하루 한 명이 와도 요리를 통해 깊은 대화를 나누는 곳으로 만들 겁니다. "
글=최진석/사진=정동헌 기자 iskr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