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이 악화되고 있는 실물경기의 완전 추락을 막기 위해 총력전에 나섰다. 기준금리(정책금리)를 추가로 인하하고 시중에 자금을 더 푸는 동시에 국채도 매입해 정부의 경기부양 재원마련을 돕겠다는 뜻을 천명한 것이다.

◆국채 매입해 정부 지원

이성태 한은 총재는 12일 기준금리 인하 결정 직후 기자회견에서 "지금 경제상황에서 추가경정예산 편성 등 경기부양을 위한 정부의 적극적 역할이 필요하다는 데 공감한다"고 말했다.

정부와 공조체제를 구축할 것임을 분명히 한 것으로 구체적으론 정부가 한은에 국채 매입을 요청해 오면 응하겠다는 의사를 내비친 것이다. 한은은 1995년 정부가 추곡수매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발행한 양곡증권을 인수한 경우가 있다.

한은은 그러나 어떤 방식으로 국채를 사들일지에 대해선 나중에 결정하겠다고 밝혔다. 중앙은행이 국채를 사들이는 방식은 크게 두 가지.국채를 바로 인수하는 것과 국채를 금융회사가 사고 이를 다시 중앙은행이 사들이는 방식이 있다. 한은은 이 두 가지 방식 중에서 후자를 선호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 총재는 지난달 말 한 강연에서 "중앙은행이 정부가 발행한 국채를 인수하는 걸 금기로 삼는 나라가 많다"며 "이는 정부까지 포함해서 중앙은행이 직접 돈을 공급하는 것을 별로 좋지 않게 보기 때문"이라고 얘기한 바 있다. 그러나 채권시장 충격과 정부의 비용부담을 줄이기 위해 인수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진단이 나오고 있다.

◆양적완화 정책도 병행

이 총재는 이날 기준금리 인하뿐 아니라 필요하다면 양적완화 정책까지 쓸 수 있다고 밝혔다. 양적완화란 중앙은행이 시중에 유동성을 직접 공급하는 정책을 말하며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와 일본 중앙은행이 기업어음(CP) 매입에 나선 것이 대표적 사례다. 통상 정책금리가 제로(0) 수준이어서 추가로 인하하는 것이 어려울 때 쓰는 것이지만 한은은 기준금리를 더 내릴 여지가 있는데도 이 정책을 쓸 수 있다는 의지를 표명한 것이다.

한은은 그러나 당장 FRB나 일본 중앙은행처럼 CP 혹은 회사채를 매입할 계획은 없다고 밝혔다. 이 총재는 "CP와 회사채 매입에 대해 외국 사례를 조사하는 등 대비는 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은은 은행 자본확충펀드에 10조원을 투입하는 것 등도 양적완화 정책의 일환이라고 설명했다.

이와 관련,신동준 현대증권 채권분석팀장은 "한은이 환매조건부채권(RP) 대상을 회사채까지 확대하는 등 기존 유동성 공급대책의 범위를 확대할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금리는 얼마나 더 내릴까

이날 한은이 0.5%포인트 금리 인하를 결정하기 전까지 시장에선 기준금리 인하 마지노선이 연 1.75~2.0% 수준일 것으로 평가하고 있었다. 실질금리가 마이너스 수준인 데다 유동성 함정에 대한 우려가 적지 않았기 때문이다.

유동성 함정이란 금리를 아무리 내려도 소비와 투자가 살아나지 않는 현상을 말한다. 하지만 이 총재가 "금리조정 여부는 여전히 열려 있으며 아직 유동성 함정에 빠지지 않았다"고 발언함에 따라 기준금리 하한선을 낮춰잡고 있는 분위기다. 서철수 대우증권 연구위원은 "기준금리가 연 1.5% 이하까지 인하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으며 임지원 JP모건 수석이코노미스트는 "경제상황이 더 악화된다면 연 1.0%로 인하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진단했다.

박준동 기자 jdpowe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