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석기 "공익위해 목숨걸고 法집행 해왔는데…"
김석기 경찰청장 내정자는 10일 자진사퇴 기자회견에서 용산 사고의 도의적 책임을 분명히 인정했다. 경찰관 1명을 포함해 농성자 5명이 사망한 참사를 두고 실질적 치안총수로서 작전을 최종 승인한 책임을 지겠다는 뜻이다. 그러나 김 청장은 경찰 진압이 불가피한 선택이었다는 점을 거듭 강조했다.

김 청장은 "(용산 화재사고는) 극렬한 불법 폭력행위에 대한 경찰의 정당한 공권력 행사 과정에서 발생한 예기치 못한 사고였다"라고 밝혔다. 후배 경찰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느냐는 질문에는 "'법과 원칙,소신은 처음부터 우리 경찰의 몫이 아니었나 봅니다'라는 어느 후배의 절규가 가장 마음에 걸린다"고 답했다.

◆정치적 이슈로 변질에 우려


김 청장은 검찰의 수사 결과 발표 직후인 지난 9일 저녁 청와대에 사퇴의사를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 청장은 이날 "화재사고 발생 직후부터 자진사퇴를 고심했다"며 "미리 사퇴 의사를 밝히는 것보다 검찰의 수사를 통해 진상이 밝혀진 뒤에 사퇴해도 늦지 않겠다는 생각을 해 왔다"고 밝혔다.

검찰이 김 청장을 포함해 경찰 전원에 대해 무혐의 처분을 내림으로써 김 청장의 선택이 빨라졌다는 시각도 있다. 검찰은 용산 남일당 망루 화재의 원인을 집중 수사해 경찰 진압의 정당성에 대해서는 비교적 납득이 갈 만한 결과를 내놨다. 그러나 철거용역과 일부 적절치 않은 작전상 행위를 지시하고 실행한 경찰 관계자들도 전부 무혐의 처리하면서 '편파수사'라는 일부 비판을 받고 있다.

김 청장의 사퇴는 사법적 책임을 면한 만큼 이러한 저항에 직면한 경찰 등의 부담을 덜어주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라는 것이다.

김 청장은 용산참사가 정치적 이슈로 변질되는 것에 대해서 우려를 표했다. 김 청장은 "사회적 정의실현보다는 목전의 정치적 이익과 정략적 판단에 따라 여론몰이식으로 경찰을 비난하고,불법 폭력의 심각성보다 경찰의 과오만을 들춰내는 비이성적인 습성을 하루 빨리 타파해야 한다"며 "나약하고 눈치보는 경찰의 모습으로는 시민의 안녕을 지킬 수 없다"고 강조했다.

◆경찰 내부 술렁

일선 경찰관들은 몹시 안타깝다는 반응이다. 방배경찰서의 한 경찰관(경위)은 "검찰의 수사 결과 발표 후 하루빨리 상황이 정리되길 바랐는데 유감"이라며 "이번 문제가 정치적으로 이용된 것에 대해 안타깝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일선 경찰관들의 사기 저하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높았다.

강북경찰서의 한 경찰관(경위)은 "경찰이 봉인데 어쩔 수 있겠느냐.계속 이런 식이라면 전국의 어느 경찰이 목숨 바쳐 국민에게 서비스할 생각을 하겠느냐.

사기가 충천해도 모자랄 판에 자꾸 저하돼 걱정"이라고 말했다. 영등포경찰서의 한 경찰관(경위)은 "'용산 참사' 때문에 청장에게 사퇴하라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앞으로 그런 일이 생기면 누가 책임지고 지휘하겠는가"라며 "김 청장이 책임지고 물러나면 당분간 인사에 혼선이 있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차기 경찰청장은

차기 경찰청장 후보로는 지난달 치안정감으로 승진한 조현오 경기지방경찰청장(54 · 부산),이길범 경찰청 차장(55 · 전남 순천)과 김정식경찰대학장(54 · 충남 예산) 등이 거론된다.

이들 중 외무고시 출신의 조현오 경기청장이 가장 앞서있다는 분석이다. 이명박 대통령과 대학 동문(고려대 정치외교학과)인데다 경찰청 경비국장을 지내 현장 사정에 밝다는 것.이길범 차장과 김정식 학장은 지역 안배 차원이라면 가능한 카드다. TK 출신(경북 성주)으로 치안총감인 강희락 해양경찰청장(57)도 하마평에 오르고 있지만 해경청장이 부임한 전례가 없다는 것이 단점이다.

치안정감 내정 상태인 주상용 대구지방경찰청장(57)은 관행에 따르면 내년 정년퇴직을 앞두고 있고 무엇보다 '경찰청장은 치안총감으로 보한다'는 경찰청 법이 부담이다. 현 치안감에서 두 단계나 승진할 경우 편법 시비가 일 수 있기 때문이다.

이해성 기자 ih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