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위기극복 선봉대는 기업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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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근찬 < 한국사이버대 교수·경영학 >
각종 경제대책 '희망' 주기엔 미흡
기업가정신 북돋는 여건 마련을
각종 경제대책 '희망' 주기엔 미흡
기업가정신 북돋는 여건 마련을
지난해 글로벌 금융시장에 몰아친 위기의 한파가 전방위에 걸쳐 진행 중이다. 위기의 파고가 높다 보니 그 처방에 대해서도 각양각색 다양한 의견들이 제시되고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거시경제적 처방과 공공 사업을 통한 단기적인 일자리 만들기 같은 방안들이 왠지 임시방편과 같이 믿음이 가지 않는 것도 사실이다.
80년 전 서구의 대공황과 요즘 경제위기의 원인은 다르지만 그 결과 사람들이 믿어 왔던 사회 · 경제시스템에 실망하고 좌절에 빠져들었다는 점에서는 동일하다. 1930년대 유럽은 전쟁과 대공황의 여파로 사람들은 일자리를 잃었고,대부분의 시민이 절망했다. 오늘날 우리 상황도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그 때와 닮아 가고 있다. 대학을 나오고도 일자리를 구하지 못하는 청년 실업자는 계속 늘고 있고,집세도 내지 못하는 수많은 자영업자들의 애환이 깊어지고 있다. 이런 상황이 지속되면 얼마 전의 미네르바 해프닝에서 볼 수 있듯이 사회는 제대로 기능하지 않고,엉뚱한 선동에도 휩쓸리는,마치 수용소 집단과도 같은 군중의 집단으로 변하게 된다.
일찍이 피터 드러커는 대공황 당시의 사회상을 서술하면서 대중의 절망감이 너무나 압도적이었기에 서구 시민들은 전체주의의 허구에도 불구하고 말도 안되는 파시스트의 대중선동에 넘어갔다고 말했다. 그런데 이런 역사적인 흐름에서 미국이 비켜 갈 수 있었던 것은 미국에서 과학적 관리법이 태동했기 때문이었다.
20세기 초 미국은 유럽으로부터 지속적으로 건너오는 노동자를 고용해 대기업 공장들이 급격하게 늘어나기 시작했는데,프레데릭 테일러가 과학적 관리법을 만들고 보급함으로써 생산성은 50배나 증가했고,몇 년 후 미국의 노동자들은 급속하게 중산층의 일원이 될 수 있었다. 다시 말해 노동자들은 굳이 혁명의 유혹에 흔들리지 않고도 살 만한 풍요로운 세상이 됐던 것이다. 그리고 이런 선순환의 흐름을 제대로 탄 나라가 바로 한국이었다. 한국의 탁월한 기업가와 근로자들은 6 · 25전쟁의 폐허를 딛고 기업을 일으켰으며 40년 만에 선진국 문턱에 오르는 쾌거를 이뤘다.
이번 경제위기의 해법도 기업가정신의 재정립에서 찾아야 함은 물론이다. 위기를 근본적으로 탈피한 후 맞을 새 시대는 사회에 대해 더욱 철저하게 책임을 지는 윤리적 기업가의 시대가 돼야 한다. 윤리적 기업가는 경쟁력을 철저히 갖춰 고용능력과 사회를 지탱할 충분한 이윤을 창출하는 기업이며,더 나아가 적극적으로 지역사회에 봉사하는 기업이다.
국난 앞에 의병으로 나서 싸웠던 조상들과 같이 오늘의 경제 국난을 극복할 전위대는 진정한 기업가정신으로 무장한 한국의 기업가들이 돼야 한다. 한국의 기업들이 오늘의 위기를 극복해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춘 글로벌 기업의 수가 지금의 두 배쯤으로 늘어난다면 우리가 처한 실업 문제를 비롯한 경제 위기는 저절로 해소되고 선진국형 경제로 진입할 수 있을 것이다.
원론적인 해결책이 늘 그렇듯이 이 처방은 중요한 전제조건이 충족돼야 적용 가능하다. 전제조건이란 바로 기업가의 역할이 중요함을 인정해 주고 기업가를 존중하는 사회적 풍토를 말한다. 예컨대 기업가가 좀 더 경쟁력 있게 일할 여건을 온 나라가 합심해서 만들어 줄 필요가 있다. 하지만 우리의 실상은 이 나라를 경제적으로 지탱할 부(富)를 창출하고 고용을 일으키는 기업가의 역할에 대해 인정은커녕 오히려 적대시하는 듯한 모습을 자주 보인다.
사실 기업가정신을 북돋우는 일은,환율의 방어나 금리 조정,그리고 단기적인 일거리를 창출하는 온갖 단기 효과를 노리는 경제정책들보다 오히려 오늘의 경제 위기에 대한 근본적인 처방임은 경제학자가 아니더라도 짐작할 수 있는 일이다.
80년 전 서구의 대공황과 요즘 경제위기의 원인은 다르지만 그 결과 사람들이 믿어 왔던 사회 · 경제시스템에 실망하고 좌절에 빠져들었다는 점에서는 동일하다. 1930년대 유럽은 전쟁과 대공황의 여파로 사람들은 일자리를 잃었고,대부분의 시민이 절망했다. 오늘날 우리 상황도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그 때와 닮아 가고 있다. 대학을 나오고도 일자리를 구하지 못하는 청년 실업자는 계속 늘고 있고,집세도 내지 못하는 수많은 자영업자들의 애환이 깊어지고 있다. 이런 상황이 지속되면 얼마 전의 미네르바 해프닝에서 볼 수 있듯이 사회는 제대로 기능하지 않고,엉뚱한 선동에도 휩쓸리는,마치 수용소 집단과도 같은 군중의 집단으로 변하게 된다.
일찍이 피터 드러커는 대공황 당시의 사회상을 서술하면서 대중의 절망감이 너무나 압도적이었기에 서구 시민들은 전체주의의 허구에도 불구하고 말도 안되는 파시스트의 대중선동에 넘어갔다고 말했다. 그런데 이런 역사적인 흐름에서 미국이 비켜 갈 수 있었던 것은 미국에서 과학적 관리법이 태동했기 때문이었다.
20세기 초 미국은 유럽으로부터 지속적으로 건너오는 노동자를 고용해 대기업 공장들이 급격하게 늘어나기 시작했는데,프레데릭 테일러가 과학적 관리법을 만들고 보급함으로써 생산성은 50배나 증가했고,몇 년 후 미국의 노동자들은 급속하게 중산층의 일원이 될 수 있었다. 다시 말해 노동자들은 굳이 혁명의 유혹에 흔들리지 않고도 살 만한 풍요로운 세상이 됐던 것이다. 그리고 이런 선순환의 흐름을 제대로 탄 나라가 바로 한국이었다. 한국의 탁월한 기업가와 근로자들은 6 · 25전쟁의 폐허를 딛고 기업을 일으켰으며 40년 만에 선진국 문턱에 오르는 쾌거를 이뤘다.
이번 경제위기의 해법도 기업가정신의 재정립에서 찾아야 함은 물론이다. 위기를 근본적으로 탈피한 후 맞을 새 시대는 사회에 대해 더욱 철저하게 책임을 지는 윤리적 기업가의 시대가 돼야 한다. 윤리적 기업가는 경쟁력을 철저히 갖춰 고용능력과 사회를 지탱할 충분한 이윤을 창출하는 기업이며,더 나아가 적극적으로 지역사회에 봉사하는 기업이다.
국난 앞에 의병으로 나서 싸웠던 조상들과 같이 오늘의 경제 국난을 극복할 전위대는 진정한 기업가정신으로 무장한 한국의 기업가들이 돼야 한다. 한국의 기업들이 오늘의 위기를 극복해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춘 글로벌 기업의 수가 지금의 두 배쯤으로 늘어난다면 우리가 처한 실업 문제를 비롯한 경제 위기는 저절로 해소되고 선진국형 경제로 진입할 수 있을 것이다.
원론적인 해결책이 늘 그렇듯이 이 처방은 중요한 전제조건이 충족돼야 적용 가능하다. 전제조건이란 바로 기업가의 역할이 중요함을 인정해 주고 기업가를 존중하는 사회적 풍토를 말한다. 예컨대 기업가가 좀 더 경쟁력 있게 일할 여건을 온 나라가 합심해서 만들어 줄 필요가 있다. 하지만 우리의 실상은 이 나라를 경제적으로 지탱할 부(富)를 창출하고 고용을 일으키는 기업가의 역할에 대해 인정은커녕 오히려 적대시하는 듯한 모습을 자주 보인다.
사실 기업가정신을 북돋우는 일은,환율의 방어나 금리 조정,그리고 단기적인 일거리를 창출하는 온갖 단기 효과를 노리는 경제정책들보다 오히려 오늘의 경제 위기에 대한 근본적인 처방임은 경제학자가 아니더라도 짐작할 수 있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