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2위 메모리 반도체 업체인 하이닉스반도체가 지난해 4조3840억원의 순손실을 기록했다. 일본 도시바와 대만 난야 등에 비해서는 실적이 양호하지만 현금 유동성 악화로 공격적 시설투자가 힘들어졌다는 관측이 나온다. 업계에서는 '실탄'이 부족해진 하이닉스가 경쟁업체들이 도산할 때까지 손실을 감수하는 '반도체 치킨 게임'에서 버틸 수 있을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하이닉스는 5일 지난해 4분기에 1조5120억원의 매출과 7820억원의 영업적자를 기록했다고 발표했다. 3분기보다 매출은 18% 감소하고 영업손실은 68% 늘어났다. 순손실은 1조3280억원이었다. 4분기 실적이 악화된 것은 반도체 가격 하락 탓이다. 4분기 하이닉스의 D램과 낸드플래시 평균 판매가격은 3분기보다 각각 43%와 18% 떨어졌다.

지난해 전체로는 6조8180억원의 매출과 1조9000억원의 영업손실,4조3840억원의 순손실을 기록했다. 영업이익률도 6%에서 -28%로 34%포인트 떨어졌다. 회사 관계자는 "반도체 업계의 극심한 불황을 극복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지만 D램과 낸드플래시의 가격이 전례 없는 수준으로 떨어지면서 실적이 악화됐다"고 설명했다.

하이닉스의 실적은 업계 평균에 비해 양호한 편이다. 하이닉스를 능가하는 실적을 올린 곳은 업계 1위 삼성전자 등 일부 업체에 불과하다. 일본 도시바는 지난해 하이닉스의 두 배가 넘는 2800억엔(약 4조3000억원)의 영업손실을 입었다. 대만 난야는 매출보다 영업손실이 더 크다.

문제는 현금 상황의 악화로 미래를 위한 투자가 힘들어졌다는 데 있다. 하이닉스는 올해 시설 투자액을 1조원 내외로 줄이기로 했다. 2조원 선을 투자한다는 종전 계획을 대폭 축소했다. 경영 기조도 '재무 안정'을 최우선으로 삼기로 했다.

업계 관계자는 "충분한 선행투자가 이뤄져야 업계를 선도할 수 있는 반도체 산업의 특성을 감안하면 하이닉스의 1~2년 후 경쟁력이 지금보다 떨어질 가능성이 있다"며 "치킨게임의 승자가 되려면 올해 실적을 끌어올려 미래를 위한 성장동력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하이닉스가 현재 수준의 시장지배력을 유지할 수 있을지 여부는 반도체 경기가 얼마나 빨리 회복되느냐에 달려 있다는 게 업계의 분석이다. 하이닉스 관계자는 "최근 1기가비트(Gb) D램의 현물가격이 3개월 만에 1달러대로 회복되는 등 반도체 가격이 반등 조짐을 보이고 있다"며 "업계 5위인 독일 키몬다 파산 이후 상황이 조금씩 호전되고 있다"고 덧붙였다.

송형석 기자 clic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