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령 혐의로 기소된 정태수(86) 전 한보그룹 회장에게 항소심에서 1심보다 높은 실형이 선고됐다.

서울고법 형사3부(심상철 부장판사)는 5일 정씨에 대한 결석재판에서 징역 3년을 선고한 1심을 파기하고 징역 3년6개월을 선고했다.

정씨는 2007년 5월 도피성 출국을 한 뒤 현재 키르기스스탄에 머물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2003년 9월∼2005년 4월 경매 중이던 서울 대치동 은마상가 일부를 강릉 영동대 학생 숙소로 임대하는 허위계약을 맺고 임대보증금 명목으로 72억 원을 받아 횡령한 뒤 이 중 27억 원을 세탁해 은닉한 혐의 등으로 불구속 기소됐다.

항소심 재판부는 "문제가 된 은마상가에 대한 임대차 계약이 진정한 계약이라 하더라도 1심에서 인정한 바와 같이 이 건물을 임차한 것은 기숙사를 설치한다는 목적보다 정씨의 이익을 도모할 목적으로 이뤄졌다고 보인다"며 횡령이나 배임 행위가 없었다는 피고인 측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또 "임대차보증금 명목의 돈을 송금할 당시 해당 건물은 기숙사로 사용할 수 있는 물적 시설이 전혀 갖춰져 있지 않았고 대학의 실무진은 이곳을 임차할 생각이 전혀 없었다"며 "정씨가 교비 유출 행위를 종용하거나 가담한 사실이 인정된다"고 판시했다.

재판부는 이에 따라 1심에서 무죄 판단한 혐의 중 2004년 9월 지급된 임대차보증금 명목의 2억6천500만원에 대해 추가로 유죄 판결했다.

재판부는 "1심보다 유죄로 인정된 부분이 늘어났고 정 전 회장이 출국하고 나서 소재지도 밝히지 않은 채 재판에 출석하지 않은 점을 고려해 더 높은 형을 선고한다"고 양형 이유를 밝혔다.

1심은 정 전 회장에게 징역 3년을 선고했지만 건강상 이유와 피해금액을 갚으려고 시도하는 점 등을 감안해 법정구속하지는 않았다.

그는 항소심 재판 중 일본에서 치료를 받겠다며 진료계획서 등을 첨부해 출국금지를 취소해달라는 집행정지신청을 했고 서울행정법원이 이를 받아들이자 해외로 나간 뒤 귀국하지 않고 있다.

(서울연합뉴스) 이세원 기자 sewnonlee@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