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문태준씨는 애완동물을 기르고 싶어하는 자녀들과 타협 끝에 거북이 한 쌍을 집에 들였다. '지극히 천천히 목의 주름을 접으며 마치 주머니에 손을 넣듯 목을 숨기는' 거북을 바라보면서 그는 '천천히 발을 빼는 것 같은 그 완행의 속도'가 지닌 장점을 느낀다. '거북은 자기 살림의 질서를 나름대로 갖고 있었다. 한가하고,욕심을 적게 부리며,기다릴 줄 알며,서두르거나 조급하지 않으며,침묵을 즐기는 고아한 성품이 있었다. 말하자면 거북은 자기를 지킬 줄 아는 처세가 있었다. '문씨 등 문인 23명이 생활에서 건져올린 소소한 깨달음을 담은 산문집 《괜찮아,네가 있으니까》(마음의숲)가 나왔다.

소설가 박민규씨는 서른이 되던 해 '어느새 인생은 날짜가 지난 스포츠신문 같은 것이 되어 있었다'고 느끼고 어느날 문득 어린아이로부터 "아저씨"라는 소리를 듣고도 가만히 있는 인간이 됐다고 말한다. 그리고 10년이 지난 후에도 지나간 청춘을 떠올리며 '청춘이… 있었던가? 그러니까 그 옛날,마치 백악기나 중생대 같은,그러니까 이억,이천오백만년 전?'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다 입시와 취직,재테크와 내집 마련으로 시간을 다 보내버리고 청춘은 이제 지나갔다고 모두들 착각한다는 점을 깨닫게 된다. 사실 청춘은 나이와는 무관한, 용감하고 무모하고 푸르른 인생의 특수한 지층이기 때문이다.

'청춘은 갔다고 외치는 한국인의 모습은 그래서 흡사 봄이 가 버렸다고 외치는 에스키모와 다를 바 없다. 봄이 온 적도 없는 곳에서,봄이 뭔지도 모르는 늙은 에스키모처럼.'

시인 안도현씨는 '삼시 세끼 배곯지 않고 먹고살 만한 호시절이라는데,한쪽에서는 영 글러먹은 세상이라고 삿대질로 세월을 다 보내고,또 한쪽에서는 옛적보다 사는 게 수월찮다고 땅이 꺼져라 한숨만 쉬고 있는' 세태를 투정이거나 엄살이라고 말한다. 그는 쌀을 한 줌이라도 아껴 보자는 심산으로 콩나물과 김치,시래기 따위를 숭숭 썰어 넣어 희멀겋게 끓인 어머니의 갱죽을 떠올린다.

시인 나희덕씨는 비구니들만 사는 암자에서 뜬금없이 빗을 빌리려 했던 실수담을 소개한다. 본의 아니게 노스님을 놀린 것처럼 되어 버려서 어쩔줄 몰라하던 나씨는 그 순간 노스님의 눈빛 위로 검은 머리칼이 있어 빗을 썼던 까마득한 시절이 스쳐 지나가는 것을 본다.

그는 자신의 실수가 산사의 노스님으로 하여금 기억의 어둠 속에서 빗 하나를 건져내도록 해 주었다고 여기며 스스로를 위로해 보기도 했다며,실수가 의외의 수확이나 즐거움을 가져다줄 때가 많다고 말한다.

나씨는 실수를 '삶과 정신의 여백'이라고 풀어내며 '그 여백마저 없다면 이 각박한 세상에서 어떻게 숨을 돌리며 살 수 있겠는가. 그리고 발 빠르게 돌아가는 세상에 어떻게 휩쓸려 가지 않고 남아 있을 수 있겠는가'라고 얘기한다. "정신과 마음은 내려놓고 살아야 한다고. 어디로 가는 줄도 모르고 뛰어가는 자신을 하루에도 몇 번씩 세워 두고 '우두커니' 있는 시간,그 '우두커니' 속에 사는 '어처구니'를 많이 만들어 내면서 살아야 한다고."

이고운 기자 cca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