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당신의 자녀가, 그렇게 평소에 고분고분 말 잘 듣던 당신의 자녀가 하루아침에 부모의 기대를 저버리고 생뚱맞은 직업을 택하겠다고 일방적으로 통보한다면, 그리고 그것에 평생을 바치겠다고 선언한다면 당신은 어떻게 할 것인가.

한 청년이 고민을 털어놓았다.
“도저히 회사연수에 참가할 수 없었습니다. 죽기보다 싫었습니다.”
얼마 전 까지만 해도 그는 우리나라 굴지의 대기업 신입사원 응모에서 최종합격을 하고 신입사원 연수를 앞두고 있었다. 이런 시련기에 안정적이고 보수가 높은 대기업에 합격했으니, 대학 동료들은 물론이고 주위 친구들로부터 한껏 부러움의 눈길을 샀다. 청년의 부모는 마치 아들이 장원급제라도 한 양 동네방네 돌아다니며 자식 자랑을 했음은 물론이다. 그때까지만 해도 그의 앞길은 탄탄하게 보장된 것 같았다.

최종합격 통지서와 함께 신입사원 연수 안내문이 날아들었다. 그러나 합격은 회사의 결정일 뿐, 그의 최종 결정이 남아있었다. 입사할 것인가, 말 것인가. 그의 마음은 흔들렸다.

결국 그는 연수에 불참했고, 취업 3수를 위해 다시 대학 도서관으로 발길을 돌렸다. 사실 청년에겐 작년에도 같은 일이 벌어졌다. 올해와 똑같은 기업에서 필기는 물론이고 면접까지 우수한 성적으로 최종 합격하고 나서는 지금처럼 되돌아선 것이다.

‘아직 배가 불러서 그런다’ 이렇게 핀잔을 할지 모른다. 하지만 청년에겐 이유가 있었다.
“제가 그 대기업 건물 앞에 직접 가보았습니다. 거대한 빌딩 정문을 드나드는 직원들을 보고 있노라니, 가슴이 콱 막혔습니다. 그 속에 저는 어디 있나요? 그들은 기업에서 나눠준 직급과 직책만 있을 뿐, 자기 이름은 없지 않습니까?”
다시 말해, 사원이 되는 순간 자기는 없어지고 기업의 부속품으로 전락하고 만다고 여겼던 것이다. 그런 이유로 청년은 진작부터 공무원은 포기했었다. 그나마 대기업은 공무원에 비해 자신의 개성과 역량을 펼칠 수 있다고 들었기에 두 번이나 기웃거려봤지만 결국은 최종 문턱에서 돌아선 것이다.

내가 전생(前生)을 살펴봐도 그랬지만, 남들이 한눈에 봐도 그는 주관이 강한 청년이었다. 그는 자기 주관과 개성이 억눌리는 게 죽기보다 싫었던 것이다. 취업 3수까지 각오하며 신문 기자나 영화감독 공부를 다시 시작하려는 이유도, 비록 남보다 늦었을지라도 자기 이름을 걸고 자기 개성을 뚜렷하게 발휘할 수 있는 일터를 택하고자 했기 때문이다.

주위를 살펴보면 부모의 기대와 동떨어진 일을 선택하는 청소년들이 의외로 많다. 학부모들은 ‘기껏 뒷바라지 해줬더니 자식은 엄한 소리를 한다’라고 하소연한다. 이럴 때 부모 자식 간의 갈등은 ‘전쟁’이란 표현이 적절할 것이다. 호적 파가라, 내 눈에 흙이 들어가기 전엔 안 된다, 이거 아니면 머리 깎겠다는 등 극단적인 언행이 서슴없이 오간다. 여린 줄만 알았던 자식 놈이 그렇게 독하고 완강하게 사생결단으로 저항할 줄이야, 부모로선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지만, 요즘은 그렇지만도 않다. 자식 이기는 부모도 많다. 그러나 오랫동안 관찰해 오건데, 유감스럽게도 부모에게 자신의 고집을 꺾인 아이치고 잘 된 아이는 별로 찾아보지 못했다. 몸은 살아있을지 모르지만, 정신은 이미 시름시름 말라 죽어가고 있다. 겉모양은 고분고분 말을 듣는 것 같지만 자식의 마음속엔 부모를 원망하는 한(恨)이 자리 잡을 것이기에 안타까울 뿐이다.

아무리 평양 감사 자리라도 제가 싫으면 그만이라고 했다. 사람마다 하늘이 준 재능이 달라서 각기 주관이 있고 적성이 있다. 그 사람이 태어난 이유이기도 하다. 그런 천명(天命)을 타인이 꺾으려하니, 아무리 온순하던 아이라 할지라도 궁지에 몰린 쥐처럼 목숨을 걸고 극렬하게 돌변할 수밖에.

“다 자식 잘 되라고 그러는 거지요, 어디 내가 호강하려고 그럽니까.”
이렇게 항변하는 부모가 많을 것이다. 충분히 이해가는 말이다. 그러나 한번쯤 다시 돌이켜보고 하는 말이길 바란다. 행여 부모의 대리만족을 위한 것은 아닌지, 부모의 사회적 지위를 의식한 걱정은 아닌지. 누구(亻)를 위한다(爲)는 위자는 거짓 ‘위(僞)’자가 아닌가.

청년의 고민은 ‘배부른 투정’이 아니라 극히 인간적인 고뇌다. 하지만 청년이 한 가지 착각하고 있는 점이 있었다. 언론사 기자도 자기가 쓰고 싶은 생각을 모두 쓰는 게 아니며, 영화감독도 자기 고집대로만 영화를 찍는 게 아니란 사실. 먹고 싶을 때 먹고, 자고 싶을 때 자는 걸인조차도 동냥하는 사람에게 의지하고 있는데 회사에서 개인일 하라고 급여를 주지는 않는다.

예전에 한 무명가수의 고민도 청년과 비슷했다. 많은 사람들이 그의 탁월한 재능이 아깝다며 연예 기획사를 추천했다. 그는 단번에 거절했다. 관객 앞에서 재주부리는 광대가 될 수 없다는 것. 철저하게 자기만의 음악세계를 고집했다.

그렇게 풍류시인처럼 여기 저기 작은 술자리와 카페를 떠돌며 시간을 보냈다. 그러나 더 이상 기타를 잡을 수 없을 정도로 몸이 극도로 쇠약해졌다. 병상에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만의 음악을 고집한다면 골방에서 혼자 기타치고 즐기면 되지, 나는 왜 관객들이 박수치는 무대 위에 섰을까?’
비록 작은 무대였지만 남들에게 굳이 음악을 들려주려한 자신을 돌아보게 되었다. 대중들 때문에 개성이 휘둘려도 안 되지만, 관객 없는 예술도 무의미하다는 사실을 무명가수는 뒤늦게 깨달은 것이다. 개인과 대중 사이에서 어떻게 적절히 조화할 것인가. 그의 인생 숙제가 되었다.

청년도 마찬가지였다. 회사와 무관한 개인적인 일에 어느 회사가 월급을 주겠는가. 재능과 적성이란 것은 분명히 존재하고 무엇보다 중요하지만, 이를 세상에 펼치기 위해서는 늘 자신과 전체가 충돌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한다. 고민은 거기서부터 출발해야했다. 사생활과 회사 일을 철저하게 구분하여 이중생활을 누리거나, 아예 회사 일에 끌려가지 않고 앞장서서 주도하는 것도 한 방법일 게다. 그러나 사람마다, 회사 일마다 여건이 각양각색이기에 자기만의 방법을 스스로 찾아갈 수밖에 없다.

청년과의 대화는 자칫 불효를 조장하는 꼴이 될 수 있어서 여간 조심스럽지 않은 자리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것 하나 만은 분명했다. 청년은 인생의 주인공이 자신이라는 근원은 잊지 않고 있었다. 비록 아직 사회를 잘 알지 못하는 미숙한 청년의 판단일 지라해도, 적어도 자신이 선택하고 자신이 책임지려는 청년의 자세만은 대견스러웠다. 나무는 나무들 사이에서 자란다. 시행착오를 두려워하지 말고 남들 속에 섞여서 자신의 적성과 영혼을 가꾸어가는 방법을 스스로 터득해 나가라고 격려해주었다.

영혼의 본성은 언제나 ‘자유’다. 창공을 훨훨 날고 싶어 한다. 나는 나일 뿐이다. 그래서 인간은 누가 뭐래도 ‘1인 1국가’다. 자유의 원리란 스스로 결정하고 스스로 헤쳐 나가는 ‘자율(自律)과 자치(自治)’가 아닐까. 남들과의 협력을 무시한다면 이기주의요, 내가 없고 전체 조직만 강조한다면 획일적 전체주의가 될 것이다. 크게 보면 개인과 전체의 상호 부조(협력)속의 ‘자율과 자치’인 것이다. 그래서 인간은 누구나 기본적으로 ‘아나키스트(자율정부주의자)’로 태어난다. 변하지 않는 것이 진리라면, 변하는 것 또한 진리다. 가장 주관적인 것이야말로 가장 객관적인 것이 아닐까.(hooam.com)

☞ 차길진 칼럼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