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위 '조사베테랑' 김길태 심판관리관 38년 공직생활 마감

공정거래위원회에서 '조사국 베테랑'으로 불렸던 김길태 심판관리관(56ㆍ조사국장)이 38년 동안의 공직 생활을 마감했다. 김 국장은 후배들에게 길을 열어 주기 위해 이달 초 명예 퇴임을 결정했고 29일 퇴임식을 가졌다.

1971년 19세에 말단인 5급(현재 9급)으로 공직 생활을 시작한 김 국장은 경제기획원 경제기획국 심사평가국 등을 거쳐 1990년부터 공정위에서 근무해 왔다. 20년 가까이 공정위 근무를 하는 동안 거래국 정책국 조사국 독점국 심판관리관실 등에서 업무 능력을 인정받았다.

김 국장은 1990년대 초반 범정부 차원의 대규모 하도급 조사를 기획해 불공정 하도급 거래 관행의 개선 필요성을 제기했고,이것이 공정위 조사국 신설의 계기가 됐다.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직후에는 계열사 간 부당 내부거래 관행을 대대적으로 조사하면서 그가 과장으로 있는 조사2과는 특수조사과라는 별칭을 얻기도 했다.

김 국장이 기업 조사를 나가면 가장 눈여겨 보는 것은 정문을 지키는 경비 담당자의 태도다. "공정위에서 조사 나왔다"고 말했을 때부터 상사를 통해 회사 고위층에게 보고하는 과정 등을 보면 그 회사가 얼마나 체계적인지 아닌지를 알 수 있다는 것.김 국장은 "수위의 태도가 훌륭한 회사는 대부분 업무 처리가 꼼꼼하고 별 문제가 없었다"며 "수위의 태도가 나쁘면 꼭 뭔가가 적발되기 때문에 시간 배분을 더 많이 한다"고 말했다.

또 회사 담당자에게 자료를 요청할 때 꼭 따라가 담당자가 보여주는 캐비닛의 바로 아래나 옆을 "여기 좀 열어 봐도 되죠" 하면서 확인하는 것도 그가 자주 쓰는 방법이다. 회사는 기본적으로 감추고 싶어하게 마련이지만 보여주려고 하는 자료 근처에서 핵심 자료가 발견되는 경우가 있다는 설명이다.

집안 사정 탓에 고졸 학력으로 관직에 입문한 김 국장은 주경야독으로 학사와 석사 학위를 딴 데 이어 최근 고려대에서 법학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과징금 부과 중심의 공정거래법 집행이 문제라고 지적한 박사논문 '시정 조치의 법적 한계와 실효성'으로 그는 이론적인 전문성도 함께 갖췄다는 평가를 받았다.

정재형 기자 jj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