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금 책정불구 새해 지원 전망 역시 불투명

올해 남북관계가 경색되면서 정부 차원의 대북 식량지원도 전혀 이뤄지지 않게 됐다.

정부 차원의 대북 식량지원이 없었던 것은 1999년 이후 9년만에 처음이다.

정부는 지난 16~19일 남북협력기금 사용을 의결하는 남북교류협력추진협의회의 올해 마지막 회의(서면)를 개최했지만 대북 식량지원 건은 논의하지 않았다.

이에 따라 2008년분으로 1천974억원이 책정됐던 대북 쌀 지원 예산은 전혀 사용되지 않았고 세계식량계획(WFP) 등 국제기구를 통해 해온 간접 식량지원도 올해는 건너뛰게 됐다.

정부는 2009년 예산에 참여정부 시절의 지원량에 해당하는 액수를 반영했지만 지원이 이뤄질지 여부는 당국간 실질적인 대화 재개 전망과 맞불려 있어 유동적이라는게 대체적인 분석이다.

◇9년만에 끊긴 대북 식량지원 = 정부 차원에서 직접 제공하는 대북 식량지원은 김영삼 정부 시절인 1995년 무상으로 쌀 15만t이 제공된 것이 시효였다.

이어 정부는 2000년 제1차 남북정상회담을 계기로 쌀 차관 지원을 시작한 이래 그해부터 2007년까지 남북대화의 정체기를 보낸 2001년을 제외하고 매년 쌀을 지원했다.

2000년과 2002~2005년, 2007년 연간 30만~50만t의 쌀 차관을 제공했고 북핵위기가 고조된 2006년에는 쌀 차관은 없이 수해 지원 명목으로 쌀 10만t을 무상지원했다.

이와 함께 1996년부터 시작된 국제기구를 통한 식량지원도 1999, 2000, 2006년을 제외하고 매년 진행됐다.

따라서 정부의 직접 지원과 국제기구를 통한 간접지원이 모두 이뤄지지 않기는 1999년 이래 올해가 처음이다.

그리고 정부 차원 인도적 지원의 범주에 포함되는 대북 비료 무상지원 사업도 1999년 15만5천t을 제공한 것을 시작으로 매년 이뤄지다 올해 처음 중단됐다.

◇왜 끊겼나 = 올해 정부 차원의 식량 및 비료지원이 중단된 것은 결국 전반적인 남북관계 악화에 기인한다는데 이견이 없어 보인다.

정부는 순수 인도적 차원의 대북 지원은 북핵 상황 같은 정치적 문제에 관계없이 추진하되, 그 이상의 지원은 북한의 지원 요청이 있을 경우 진행하며 식량상황이 매우 심각하거나 재해가 발생한 경우 북한의 요청없이도 지원을 추진한다는 등의 `원칙'을 천명했다.

그러나 북한은 6.15, 10.4 선언의 전면 이행 약속을 대화의 전제 조건으로 삼으면서 쌀.비료 지원 요청을 하지 않았으며 우리 정부가 5~6월 2차례 걸쳐 제안한 옥수수 5만t 지원도 받지 않았다.

국제기구를 통한 지원이 현실적인 대안으로 보였지만 7월 금강산 관광객 박왕자씨 총격 피살사건, 육로 통행 제한.차단 등을 담은 12.1 조치 시행 등으로 대북 여론이 악화함에 따라 그마저도 이뤄지지 못했다.

◇새해 지원 전망 = 새해 대북지원 전망도 현재로선 불투명하다.

정부는 차관으로 주던 쌀지원을 무상 지원으로 바꾸기로 하는 한편 쌀 40만t 예산으로 3천520억원, 비료 30만t 예산으로 2천917억원을 각각 2009년도 남북협력기금 사용계획에 반영했지만 그대로 집행될지예측하기가 불가능한 상황이기 때문이다.

우선 정부는 이산가족 상봉과 비료 지원, 당국간 대화와 쌀 차관 지원을 각각 암묵적으로 연계했던 과거 관행을 따르지 않겠다는 기조다.

즉 일정 규모 이상의 대북 지원에 대해서는 납북자.국군포로 문제의 진전, 기존 규모를 뛰어넘는 이산가족 상봉 등 우리의 인도적 요구사항을 연계하겠다는 입장이다.

또 쌀 지원을 무상으로 하기로 한 만큼 지원시 WFP 등 국제기구의 모니터링 수준을 적용함으로써 분배 투명성을 강화한다는 복안이다.

그러나 남북관계가 획기적으로 풀리지 않는 한 이런 강화된 조건을 북한이 쉽게 수용할 가능성은 높지 않아 보인다.

결국 식량지원이 되려면 대화재개 등 당국 관계의 정상화가 선행되거나 맞물려야 한다는 얘기다.

일각에서는 WFP 조사결과, 북측이 외부 도입 예상량을 포함하더라도 내년 10월말까지 식량 83만6천t이 부족할 것으로 추정되는 만큼 춘궁기를 앞두고 대남 관계 개선에 나설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지만 단순히 `배가 고프다'는 이유로 남측에 손을 내밀 가능성은 작다고 보는 이들이 더 많다.

즉 북한은 남북관계를 이대로 둔 채 미국 새 행정부와의 직접 대화에서 성과를 내기란 어렵다는 판단을 할 때까지 남측과 계속 각을 세우려 할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에 힘이 실리는 양상이다.

(서울연합뉴스) 조준형 기자 jhcho@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