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1호 여성 트럭 판매왕'인 대우자동차판매의 박은화 부장(48)을 그녀의 사무실이 있는 서울 강동구 대우자판 강동트럭지점에서 만났다. 트럭 판매왕 답게 강인한 인상에 괄괄한 성격을 가졌을 것이라는 예단은 첫 대면에서 그대로 무너졌다. 오히려 차분하고 여성스러운 선생님 같은 느낌이었다.
공무원 남편과 두 아이를 둔 평범한 가정주부에서 1993년 트럭 영업사원으로 변신한 박 부장은 지금까지 1000대가 넘는 트럭과 버스를 팔았다. 상용차 1000대 판매 돌파 기록은 박 부장이 국내에서 두 번째다. 대당 1억원만 잡아도 1000억원이 넘는 금액.승용차로 따지면 3000~5000대에 달하는 물량이다. 상용차가 뭔지도 몰랐던 33세의 아줌마 판매사원이 15년여만에 쌓아올린 실적이라고는 믿기 어려울 정도다.
그녀가 주로 파는 차는 8t이상 대형트럭과 건설현장에서 쓰는 15~24t 덤프트럭,레미콘 차량 등이다. 자연히 상대하는 고객 대부분은 남자다. "여자라고 색안경을 끼고 보는 사람도 많았고 술을 못 마신다고 계약을 파기한 사장님도 있었죠."
금녀의 영역인 트럭 영업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던 성공 비결로 그녀는 성실과 신뢰를 꼽았다. 억대 연봉을 받는 판매왕이 된 비법치곤 평범해 보인다. 박 부장은 "트럭 레미콘 등 큰 차가 모이는 곳이라면 어디든 찾아다녔다"며 "서울 양재동과 신정동의 트럭터미널은 물론 전국 각지의 차고지를 매일 들러 고객을 발굴했다"고 소개했다.
그녀는 술과 인맥을 바탕으로 차를 파는 남성 영업사원에겐 없는 여성 특유의 꼼꼼함과 모성애를 무기로 고객 기반을 넓혀나갔다. 박 부장이 관리하는 고객 리스트는 2000여명에 이른다.
박씨는 "한밤중에라도 차에 문제가 생기거나 부품이 필요할 때면 자비를 털어서라도 문제를 해결해 줬다"며 "차량 노후 주기를 세심하게 파악해 5년 또는 10년에 한 번씩 차를 바꿀 수 있도록 알려주고 운송거리와 종류에 적합한 차량을 추천해 주려고 노력했다"고 말했다.
영세 지입차량 운전사가 대부분인 고객들을 만나면서 자녀 교육이나 금전 문제를 상담해 준 것도 큰 도움이 됐다고 했다. "고객들에게 한번 믿음을 얻고나니 그 뒤로는 고객들이 알아서 영업을 해주시더군요. 처음엔 동료 남성 직원들의 시샘과 고객들의 냉소적인 태도가 부담스러웠지만 오히려 여성 특유의 장점을 살린 덕분에 좋은 성과를 낼 수 있었습니다. "
독실한 기독교 신자인 그녀는 '밤에는 절대로 고객을 만나지 않는다'는 철칙을 세우는 등 자기관리에도 철저했다. 여성이라는 이유 때문에 불필요한 오해를 받지 않기 위해서다.
"술을 한 모금도 못 마시는 체질이어서 남자 고객들과 술자리를 갖는 대신에 삼계탕 장어구이 등 몸에 좋은 보양식을 먹으러 다녔죠.이제 전국에서 유명한 맛집은 웬만큼 꿰고 있을 정도예요. " 그녀는 한꺼번에 20~30명에 달하는 고객들의 밥값을 내는 일도 다반사다. 하지만 밥값이 술값보다 싸기 때문에 큰 부담이 되지는 않는다고 했다.
최근 자금시장 경색으로 상용차 할부금융 금리가 연 13%로 오르고 경기침체가 심화되면서 상용차도 수요 부진을 비켜가지는 못하고 있지만 그녀는 올해 82대를 팔아 7년 연속 판매왕 자리를 지켰다. 그녀의 새해 판매 목표를 들어봤다. "몇 대를 더 팔겠다는 욕심보다는 이 일을 그만뒀을 때 고객들이 저를 '든든한 후원자'였다고 기억해주는 게 제 소망입니다. "
글=김미희 기자/사진=임대철 인턴 iciic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