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자동차 시장이 불황의 터널로 진입하면서 각국 정부가 지원책을 앞다퉈 내놓고 있다. 하지만 한결 같이 고강도 구조조정이라는 조건을 달고 있다. "백지수표(blank check)는 없다"는 게 각국 정부의 입장이다. 그래서 자동차 업계의 생존은 노조에 달렸다는 지적도 나온다. 내년 자동차 시장이 올해보다 더 나빠질 것이란 전망이 잇따르는 상황에서 각국은 '구조조정 없는 구제금융은 없다'는 원칙을 내세우고 있다. 아오키 사토시 일본자동차제조업협회(JAMA) 회장은 "일본 자동차 판매는 내년에 31년 만에 최저인 500만대 미만이 될 것"으로 내다봤다. 내년 미국의 신규 승용차 수요도 6% 줄어든 1250만대에 불과할 것으로 예상됐다.

◆미,구조조정 안하면 구제금융 회수
세계 자동차 생존 '노조의 선택'에 달렸다
미 자동차업체 '빅3' 중 제너럴모터스(GM)와 크라이슬러가 지난 19일 174억달러의 긴급 단기 구제금융을 지원받기로 했으나 이들의 생존 여부는 노조에 달렸다는 게 해외 언론들의 분석이다.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임금 삭감'과 '복지 축소'를 지원 조건으로 달았다. 이 같은 조건이 충족되지 않으면 구제금융을 회수하겠다고 못박았다.

미 정부는 GM과 크라이슬러 노조에 미국에 진출해 있는 도요타,혼다 등 일본자동차 공장에서 일하는 미국 근로자들과 같은 수준으로 임금을 맞추라고 요구하고 있다. 헤리티지재단에 따르면 GM 노조원들의 시간당 평균 노동비용(임금과 각종 수당 포함ㆍ2006년 기준)은 73.26달러,크라이슬러가 75.86달러인 데 비해 도요타 근로자는 47.60달러,혼다 42.95달러에 불과하다.

하지만 미 정부의 요구대로 자동차 회사들의 구조조정이 실현될지는 미지수다. 전미 자동차노조(UAW)의 론 게텔핑거 위원장은 강력 반발하고 있다. 그는 "부시 정부가 노조원에게 불공정한 조건을 끼워넣었다"며 "차기 오바마 정부와 협력해 불공정한 조건을 제거할 것"이라고 밝혔다. 자동차 노조를 주요 지지기반으로 하는 민주당의 반발 역시 변수다. 그러나 미국 일반 근로자들의 시간당 평균 노동비용이 25.36달러에 불과하고,자동차업계 지원에 대한 여론이 곱지 않아 노조엔 상당한 압력으로 작용할 전망이다.

◆'자동차 지원 백지수표는 없다'

자동차 업계에 개혁을 주문하는 곳은 미국 정부만이 아니다. 영국 자동차산업에 대한 구제금융 방안을 업계와 협의 중인 피터 만델슨 산업부 장관은 "흠이 있는 경영계획을 갖고 있는 기업에 대한 백지수표는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기술 등에서 미래에 기여할 수 있는지를 판단해 구제금융을 지원하겠다는 것이다. 스티븐 하퍼 캐나다 연방총리도 GM 및 크라이슬러의 캐나다 자회사에 대한 구제금융 지원을 발표하면서 "자동차 회사들은 비즈니스 방식을 바꿔야 할 것"이라고 촉구했다.

유럽연합(EU)도 개별 자동차기업에 대한 구제금융보다는 친환경차량 개발에 대한 지원에 역점을 두고 있다. 프랑스가 자동차 구매시 1000유로(181만원)를 지원하는 대상을 저탄소 배출 차량으로 교체할 때로 제한한 것이나, EU가 친환경차 개발 용도로 50억유로(9조844억원)를 지원키로 한 게 대표적이다.

우리나라에서도 한국자동차공업협회가 건의한 친환경차 개발을 위한 연구개발(R&D) 비용 추가 지원 등을 검토 중이다. 전문가들은 정부 지원과 함께 완성차 업체들의 뼈를 깎는 자구 노력이 병행돼야 한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노조의 양보가 불가피하다는 얘기다.

워싱턴=김홍열 특파원/오광진 기자 come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