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팅컬처(Cheating Culture). 데이비드 캘러헌 지음. 강미경 옮김. 서돌. 419쪽.1만8000원

사기꾼이 굳게 믿는 삶의 철학이 있다. "나는 속인다. 고로 존재한다. " 남을 속여야 살 수 있고,속이는 것이 살아가는 이유다. 속임수에 능한 사람은 거짓말을 밥먹듯이 한다. 언제부터인가 우리 사회에서도 땀 흘려 돈을 벌기보다 속임수로 쉽게 돈을 챙기려는 편법이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지금의 경제빙하기도 빠르고 쉽게 돈을 버는 '편리한 편법'에서 비롯됐다.

정직하고 성실하면 손해본다는 사회적 불신감과 패배의식이 속임수를 재촉한다. "다들 그렇게 한다"는 인식의 이면에는 "정도를 걸으면 나만 손해다"라는 불신풍조가 숨어 있다. 죄는 있고 처벌은 없는 사회,있어도 계급적 지위나 권력의 유무에 따라 차별적으로 법이 적용된다고 느끼면서 속임수의 유혹과 마법은 더욱 커져간다.

법(法)이라는 한자는 물(水)이 멈추는(去) 곳을 의미한다. 물은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흘러가 멈춘다. 법이 사회적 강자에게는 통하지 않고 힘없는 약자에게만 엄격하게 적용되는 사회일수록 속임수가 극성을 부린다. 500억원을 횡령한 범인은 이런저런 편법으로 법의 그물망을 벗어나지만 500만원 사기범은 교도소로 간다는 사회적 인식이 팽배하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부와 명예를 위해 최선의 노력(?)을 경주한다.

법은 누구에게나 보편적으로 적용되는 '진리'로 통용돼야 한다. 그렇지 않고 사회적 지위와 계층에 따라 자기 편의주의적으로 적용되는 '편리'와 결탁되면 사회적 약자는 불만과 불신을 갖게 된다. 속임수와 편법은 바로 이런 사회에서 꽃을 피우기 시작한다.

데이비드 캘리헌의 <치팅컬처-거짓과 편법을 부추기는 문화>는 속임수와 편법이 난무하는 사회 현상을 문화적으로 해석한 역작이다. 공공정책연구기관 데모스의 공동 창립자인 그는 9.11 사태로 뉴욕 신용조합본부 ATM(현금자동입출금기)망에 오류가 생겼을 때 4000여명이 통장 잔액보다 더 많은 돈을 인출해 간 사건 등을 예로 들면서 미국의 속임수 문화를 낱낱이 파헤친다. 그리고 '새로운 경쟁 압력''승자독식 세태''사회적 유혹 증가'를 원인으로 꼽는다.

그의 지적대로 속임수는 남보다 앞서갈 수 있는 비밀무기이자 남보다 덜 노력하고도 더 많이 가질 수 있는 편법이다. 속임수와 편법은 상대를 인정하고 배려하기보다 나의 편리를 추구하고 편안함을 확보하는 일종의 마약이다.

속임수는 양심과 마지막까지 사투를 벌인다. 많은 사람이 교통 신호등 앞의 정지선을 안 지키는 이유는 무엇일까? 정지선을 지키면 나만 손해볼 수 있다는 오랜 관행이 정도(正道)를 걷고 질서를 지키는 사람들의 마음을 유혹한다.

'바늘 도둑이 소 도둑'이 되는 것처럼 작은 법규 위반과 정직하지 못한 행동은 이제 사회적 물의를 불러일으킬 정도로 큰 사기를 쳐도 죄책감을 느끼지 못한다.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던 작은 속임수가 돌이킬 수 없는 엄청난 사건과 사고를 일으킨다. 강둑의 작은 구멍이나 균열이 둑 전체를 무너뜨릴 수 있듯이 작은 속임수 하나가 개인은 물론 기업 전체를 무너뜨릴 수 있다. 편법이 난무하고 사기가 판을 치는 사회를 바로잡는 방법은 얄팍한 속임수는 절대로 통용되지 않는 사회적 안전망과 이를 지원하는 시스템 및 제도를 정비하는 일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승자가 모든 것을 독식하는 사회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편법'을 '편리'하게 적용하면 된다는 인식을 불식시키는 도덕적 재무장이다. 사회적 약자나 빈곤층도 정직하게 살면 꿈을 펼칠 수 있는 문이 열린다는 믿음을 줄 때 속임수는 줄어들 것이다.

살 만한 세상을 만들어가는 사람은 '머리 좋은 사람'이라기보다'진지한 실천을 반복'하는 사람이다. 정직과 성실,땀과 정성이 사람을 감동시키는 유일한 길이자 가장 부가가치가 높은 자산임을 어릴 때부터 습관화시키는 교육의 중요성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그런 점에서 규칙을 지키면 누구나 앞서 나갈 수 있다는 믿음을 바탕으로 한 사회적 합의와 새로운 차원의 성과주의 도입,인성교육 강화 등 저자의 세 가지 대안에 공감한다.

이 책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남보다 빨리 성공해야 된다는 편법지상주의와 부패공화국의 사회적 병리를 냉철하게 조망하는 혜안과 통찰력을 함께 제공해준다.

유영만 한양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