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도 예산안 처리 기한인 지난 12일 오전 11시.국회 운영위원장실에서 열린 여야 원내대표 회담에서는 이미 협상 결렬 가능성이 감지됐다.

"(예산안에 대해) 설명 좀 해 달라"는 홍준표 한나라당 원내대표의 요청에 회담에 참석했던 이한구 예결특위 위원장이 "야당이 재원도 없는데 4조3000억원을 증액해 달라고 한다. 국채를 더 늘릴 수는 없다"며 회담장을 박차고 나오면서다. 이미 협상이 결렬됐다고 판단한 이 위원장은 이때부터 '밤샘 예산안 처리'를 준비했다고 한다.

이견을 좁히지 못한 채 기약없는 오후를 보내던 여야는 저녁 늦게부터 바빠지기 시작했다.

한나라당이 오후 11시 본회의를 열어 감세 법안 등 예산 부수법안을 직권상정으로 처리하고 새벽에 예결특위 소위와 전체회의,본회의를 열어 예산안을 통과시킨다는 스케줄을 확정하면서부터다.

민주당과 민주노동당이 본회의장 앞에서 "형님 예산을 삭감하고 일자리 창출 예산을 늘리라"며 시위를 벌이는 가운데 김형오 국회의장은 "12일까지 예산안을 처리키로 한 국민과의 약속을 지켜야 한다"며 본회의를 열어 부수법안들을 처리했다. 이 과정에서 야당 의원들이 거세게 항의,고성과 몸싸움이 오가기도 했다.

항목별 예산안을 확정짓는 계수조정 소위는 결국 다음 날 오전 6시에 열렸다. 그 사이 기획재정부는 수치의 오차를 바로잡기 위해 수정 작업을 거듭했다. 소위가 시작되자 민주당 위원들이 회의장에 들어가 거칠게 항의한 뒤 곧바로 퇴장했다.

곧이어 1000여쪽의 예산 자료에 대한 검토가 1시간30분 만에 끝났다. 이 와중에도 지역 예산 민원을 챙기기 위한 의원들로 회의장 앞이 붐비는 모습이 연출되기도 했다. 이어 오전 9시15분께 예결특위 전체회의가 열려 단 8분 만에 처리를 끝냈다.

오전 9시54분 예산안 최종 처리를 위해 본회의가 속개되자 민주당 의원들은 현수막과 피켓을 들고 항의농성을 벌였고 이 과정에서 회의장은 아수라장이 됐다.

결국 무려 11명이 의사진행 발언을 하고 민주당 의원들이 퇴장한 후 오전 11시17분에서야 예산안은 184명의 찬성으로 본회의를 통과했다.

예산안이 여야 합의 없이 강행 처리된 건 야당이던 한나라당이 사학법 개정 파문으로 예산안 심의를 거부한 2005년 이후 3년 만에 처음이다.

유창재 기자 yoocoo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