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 제수씨,집 좋~습니다!" "감사합니다. 차린 건 없지만 많이 드세요. "

'집들이' 때면 흔히 볼 수 있는 광경이다. 초대받은 이들은 대개 휴지나 세제를 사간다. 휴지ㆍ세제가 당장 필요한 생필품이긴 하지만 무슨 특별한 이유가 있는 것일까.

집들이에 관한 가장 오래된 기록은 18세기 홍만선의 농사요결서 '산림경제'(山林經濟)다. 집들이를 한자로 '入宅(입택)',즉 '집에 들어간다'고 했다. 요즘 집들이가 이사를 축하하는 행사인 반면 조선시대에는 이사 그 자체를 뜻했다. 1970~80년대만 해도 이삿날 집에서 쓰던 화로나 아궁이 '불씨'를 가져갔고,물동이도 물이 담긴 그대로 옮겼다. 그래야 이전 집에서 누리던 복이 이어진다고 믿었기 때문.집들이 선물로 당시 성냥과 양초가 유행한 것도 '불씨'와 관련이 있다.

예로부터 집을 옮기면 액운을 쫓고 복을 부르는 의식들이 행해졌다. 이사간 첫날 밤,부정을 막기 위해 머리를 북쪽으로 두고 잤고 가택신에게 제사(고사)를 지냈다. 종교적 의미로서 액운,부정을 씻어내는 정화의 의례였다.

휴지ㆍ세제를 선물하는 것도 이런 정화 의례와 연관이 깊다. 배영동 안동대 민속학과 교수는 "주거지를 이동하면 새집이든 헌집이든 정화할 필요가 있다고 여겼고 그 연장선에서 휴지나 세제가 현대의 정화제 역할을 맡게 됐다"고 설명했다.

흔히 '휴지처럼 술술 잘 풀리고 비누거품처럼 행복이 퐁퐁 솟아나길 바란다'는 뜻으로 휴지ㆍ세제를 선물한다는 것은 속설에 불과하다. 배 교수는 "휴지처럼 술술 잘 풀리라는 것은 후대 사람들이 본래 뜻을 모르고 잘못 의미를 부여한 것"이라고 말했다.

최진석 기자 iskr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