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내야할 국민연금 불참 의사ㆍ은행도 난색
금리 되레 상승…채권시장 "금융위 지나치게 서둘렀다"

금융위원회가 지난 13일 내놓은 10조원 규모의 채권시장안정펀드 조성 방안은 관계기관과의 사전 협의조차 제대로 거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이에 따라 금융위가 펀드 조성에 참여할 것이라고 발표한 국민연금마저 '불참' 의사를 밝히는 등 펀드 조성 자체가 불발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게 됐다. 일각에서는 중요한 정책이긴 하지만 금융위가 지나치게 서둘러 채권시장에 오히려 불안감만 조성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싸늘한 반응

금융위는 당초 10조원 가운데 2조원은 산업은행 출자금으로 마련하고 나머지 8조원은 연기금과 은행 증권사 보험사 등 금융회사를 통해 조달해 카드채나 회사채 등을 매입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정작 돈을 내야 할 국민연금은 "현재로선 펀드에 참여할 계획이 없다"는 뜻을 분명히 하고 있다. 국민연금 고위 관계자는 18일 "자체적인 투자 기준을 세워놓고 우량 회사채와 은행채 등을 계속 사들이고 있다"며 "굳이 채권안정펀드에 들어갈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보건복지가족부 관계자도 "채권안정펀드와 관련해 어떤 사전 연락도 받지 못했다"며 "일단 터트려놓고 나중에 협의하면 된다는 생각을 한 것 같은데 국민의 '종잣돈'인 국민연금을 마음대로 동원할 수 있다는 발상은 잘못된 것"이라고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은행들도 난색을 표하고 있다. 가뜩이나 자금 사정이 어려운데 채권안정펀드에 자금을 대라는 것은 무리라는 것이다. 금융위는 뒤늦게 한국은행에 유동성 지원을 요청했지만 한은도 황당하다는 반응이다. 한은 관계자는 "금융위가 한마디 사전 협의도 없이 정책을 발표해놓고 이제 와서 협조 요청을 하는 이유를 모르겠다"며 "협조요청을 받았으니 검토는 하고 있지만 아직 결정된 것은 없다"고 말했다.



◆시장 혼란 극심

채권안정펀드 조성 계획이 발표된 이후 채권시장도 혼란에 빠졌다. 이날 3년 만기 국고채 금리는 연 5.36%에 마감해 채권안정펀드 발표 이후에만 0.42%포인트나 뛰었다. 3년 만기 회사채 금리(AA― 기준)도 이 기간 0.51%포인트 오르며 이날 연 8.84%에 거래를 마쳤다.

금융회사들이 펀드 참여를 위해 보유중인 국고채를 파는 '구축효과(crowding-out effect)'가 발생할 것이란 우려로 국고채 금리가 뛰고 이에 따라 회사채 금리도 덩달아 오르고 있는 것.채권시장 관계자는 "금융위 발표는 한은의 신규 유동성 계획이 빠져 있다는 점에서 결국 아랫돌을 빼서 윗돌을 괴라는 얘기"라며 "채권안정펀드가 오히려 채권시장을 혼란에 빠트리고 있다"고 지적했다.

◆일단 터뜨리고 보자?

금융위는 그러나 채권안정펀드가 채권시장을 살릴 수 있는 마지막 카드인 만큼 반드시 성사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금융위 관계자는 "이 펀드로도 채권시장의 경색이 풀리지 않으면 문제가 심각해진다"며 연기금 등과 협의를 서둘러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말했다.

금융계 관계자는 이에 대해 "최후의 카드를 꺼내면서 관계 기관과 사전 협의도 제대로 하지 않고 발표한 것은 일단 발표하고 보자는 전형적인 한건주의"라고 말했다.

주용석/서욱진/정재형 기자 hohoboy@hankyung.com



용어풀이

◆채권시장안정펀드 =채권시장 경색으로 일시적인 자금난을 겪고 있는 기업을 지원하기 위해 정부가 10조원 규모로 조성하겠다고 밝힌 펀드.금융위원회는 이달 내에 기관별 투자규모,펀드운용 주체,정부의 신용보강 방안 등을 확정한 뒤 다음 달 펀드를 조성해 자금을 투입키로 했다. 투자대상은 금융채 회사채 프라이머리CBO(채권담보부증권) 등 모든 채권으로 신용등급 BBB+ 이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