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친 입찰경쟁 유발…비리에 노출
주인없는 지배구조…견제세력 부족
납품 리베이트 관행·인사청탁도 여전


그룹 최고경영자(CEO)의 잇단 구속과 사퇴로 인해 창사 이래 최대 위기에 빠진 KT 사태는 주인 없는 민영 기업의 한계를 드러낸 것이라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2002년 공기업에서 민간 기업으로 변신했지만 납품 리베이트 관행이나 인사 청탁 등 고질적인 병폐가 그대로 이어져 위기를 자초했다는 것이다. KT그룹 내부에서도 이번 사건을 계기로 진정한 국민기업으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잘못된 관행을 바로잡을 수 있는 구조적 쇄신이 시급하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

◆비리 유혹에 노출된 입찰제도

비리에 취약한 납품 구조가 가장 큰 문제다. KT와 KTF의 올해 네트워크 장비 구매 예산만도 각각 2조6000억원과 9500억원에 달한다. 입찰 방식이 지나치게 가격 경쟁에 의존하는 구조여서 중소 업체들이 비리 유혹을 느끼기 쉽다는 지적이다.

이번 검찰 수사에서 주로 문제가 된 KTF의 중계기 납품 과정에는 매번 20여개 넘는 업체가 가격 경쟁을 벌였다. 삼성전자 LG노텔이 양분하고 있는 기지국 분야와 달리 중계기는 기술 장벽이 높지 않아 중소기업 간 경쟁이 치열한 분야이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KTF는 기술 심사 등 일정 요건을 통과한 모든 업체가 매번 가격 입찰에 나설 수 있게 해 경쟁을 부추겼다. 입찰 결과에 따라 지난해 100억원 이상의 매출을 올렸던 곳도 다음해에는 매출을 하나도 올리지 못할 수 있다 보니 입찰업체로서는 비정상적인 방법을 동원할 유혹이 커진다는 것이다. 출혈 가격 경쟁을 막기 위해 적정가 입찰제를 도입했다고는 하지만 오히려 담당 임원이 마음만 먹으면 가격 정보를 외부에 유출해 입찰 비리를 일으킬 수 있는 허점을 노출했다.

경쟁 업체인 SK텔레콤은 장비 입찰시 기술 평가를 통해 2~3곳을 우선협상 대상자로 선정하고 이후 가격 협상에 따라 물량을 나눠 주는 방식을 도입했다. 가격이 입찰의 최우선 조건이 아니다 보니 KTF처럼 비리가 개입할 여지가 적다는 평가다.

◆견제력 약한 지배구조

KT는 그동안 지배주주가 없는 지분 구조와 사외이사가 이사회 의장을 맡는 경영구조 덕분에 지배구조 최우수 기업으로 꼽혀 왔다. 그러나 지배주주가 없는 것이 그룹 내부의 고질적인 병폐를 오히려 키운 것 아니냐는 지적이 제기된다. 경영진에 대한 주주들의 견제를 기대하기 어려운 탓이다. KT의 주요 주주는 주식투자 수익에만 관심이 큰 외국 투자펀드들이다.

KT 이사회의 역할에 대한 비판도 나온다. 3명의 상임이사와 7명의 사외이사로 구성된 KT 이사회는 윤정로 KAIST 인문사회과학부 교수가 의장을 맡고 있다. 사장 선임도 사외이사 중심으로 구성되는 사장추천위원회에서 할 정도로 사외이사의 권한이 크다. 김우봉 건국대 교수는 "이사회에 사외이사가 다수 포진됐더라도 이사회가 경영진을 견제하고 기업의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기 쉽지 않다"며 "독립적인 내부 감사시스템이 작동하느냐 여부가 더 중요할 수 있다"고 했다.

업계 관계자는 "KT가 민영화됐는데도 아직도 정치권 등의 외풍에 시달리다 보니 경영진들이 유혹에 빠지기 쉬운 것도 이번 사태를 낳은 이유로 보인다"고 말했다.

박영태/김태훈 기자 py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