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디플레 우려에 英ㆍ日ㆍ獨 성장률 급락 … 亞 장기침체 가능성

1990년대 일본이 겪었던 '잃어버린 10년(장기불황)'이 세계경제를 덮칠 수 있다는 우울한 전망이 나오고 있다. 소비위축이 장기화되면 디플레이션(물가하락을 동반한 경기침체)의 늪에서 빠져나오기 쉽지 않기 때문이다.

수출시장인 미국과 유럽 경제가 살아나지 않으면 아시아 신흥국의 경기하강 국면이 1990년대 말 외환위기 때보다 오래 지속될 것이란 관측도 있다.

◆디플레이션 시대 오나

금융위기가 발발한 미국 등 선진경제권은 지난 2분기 이후 성장률이 급락하고 있다. 미국의 3분기 성장률(이하 전분기 대비)은 소비지출이 17년 만에 처음으로 3.1% 감소하며 ―0.3%로 주저앉았다. 영국도 3분기에 16년 만에 처음 마이너스 성장(-0.5%)을 보였으며,캐나다는 지난 8월 성장률이 0.3% 후퇴했다. 2분기에는 일본이 ―0.7%(연율로는 ―3.0%),독일은 ―0.5% 성장을 기록했다.

뉴욕타임스(NYT)는 이와 관련,미국 경제에 디플레이션의 위협이 불거지고 있다고 1일 보도했다. 얼마전만 해도 인플레이션(물가상승)을 걱정해야 했지만 세계적 경기침체 우려가 확산되면서 원자재 가격이 폭락하고 다른 상품과 서비스 가격도 내릴 조짐을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 12월 인도분 서부텍사스원유(WTI) 가격은 지난달 31일 한 달 전에 비해 32.6% 떨어진 배럴당 67.81달러에 거래를 마쳤다. 1983년 이후 월간 단위로 가장 큰 내림폭이다. 19개 원자재로 구성된 로이터 CRB지수는 한 달간 24% 떨어지면서 반세기 만에 가장 큰 낙폭을 보였다.

이처럼 물가는 떨어지는데 소비는 더 위축되고 있어 문제다. 미 상무부에 따르면 3분기 미 소비지출은 무려 3.1% 줄어 1991년 이후 처음으로 감소세를 기록했다. 시사주간지 뉴스위크 최신호(11월10일자)는 '풍족함의 미래'란 제목의 커버 스토리에서 "미국 경제는 이제부터가 진짜 문제"라고 보도했다.

경기가 회복되더라도 과거와 같은 수준의 성장 속도를 회복하긴 어려울 것이며 미국인들은 세금 부담과 에너지 요금,의료비 지출 때문에 '풍요 속 빈곤(Affluent Deprivation)'을 경험할 것으로 전망했다. 이어 "내일은 오늘보다 나아질 것이란 미국인들의 진보에 대한 믿음 자체가 무너지고 있다"고 전했다.

◆아시아 침체도 오래갈듯

10년 전 아시아 위기 때 아시아 경제는 선진국에 수출을 급격히 늘려 빠르게 회복될 수 있었지만 이번에는 미국과 유럽 경제가 금융위기로 큰 고통을 겪어 수출을 바탕으로 한 회복을 기대하기 힘들게 됐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아시아 경제의 침체가 1990년대 말처럼 심각하진 않더라도 기간이 더 오래 지속될 수 있다고 보도했다. 이 신문은 또 한국과 인도의 경우 통화가치가 금융위기 속에 급락,수입물가를 비싸게 만들어 소비를 위축시킬 우려도 생겨나고 있다고 전했다. 부동산가격 하락에 따른 대출 부실 문제가 아시아 경제를 어렵게 할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장규호 기자 danielc@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