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 한.일 월드컵'의 히딩크 리더십만큼이나 최근 들어 김성근(SK 와이번스).김경문(두산 베어스) 감독의 용병술이 화제다. 팀을 관리하는 노하우,즉 강력한 카리스마에 의한 팀 장악력과 원칙을 고수하는 자세,새로운 인재를 알아보는 시야 등은 유능한 최고경영자(CEO)라면 반드시 갖춰야 할 미덕으로 거론된다. 이런 덕목 외에 뛰어난 패션 감각 역시 훌륭한 감독의 필수조건으로 떠오르고 있다.

스코틀랜드의 노신사,알렉스 퍼거슨

'아니,감독이 선수들만 잘 조련하면 되지 옷차림까지 신경써야 한다는 게 가당키나 한 말인가?' 대개 의아해 하겠지만 기업화된 현대 스포츠팀의 면모를 살펴보면 그 타당성을 찾을 수 있다. 이제 감독은 벤치에 앉아 작전 지시만 내리는 지휘관이 아니라 직접 언론을 상대하고 팀을 홍보하는 '얼굴마담' 역할까지 겸한다.

실제로 영국 프리미어리그에선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맨유)의 알렉스 퍼거슨이나 아스날의 아르센 웽거 같은 유명 감독들이 슈퍼스타 못지않게 친숙한 얼굴로 신문 지상에 자주 오르내려 팀 인지도를 높이고 있다. 이쯤 되자 감독들도 '어떻게 하면 대중에게 멋진 모습으로 각인될까'에 관심을 쏟고 있다.

영국에서 가장 패셔너블한 감독으로 꼽히는 인물은 '스페셜 원'이란 별명의 주제 무리뉴 전 첼시 감독.첼시를 맡자마자 단숨에 팀을 '빅4'의 하나로 격상시켰던 무리뉴는 특유의 독설만큼이나 멋진 패션으로 언론과 대중의 환호를 한몸에 받았다. 몸에 딱 맞는 견고한 수트,지중해빛 푸른 셔츠,그리고 이런 차림에 어울리는 구릿빛 피부와 잘 생긴 얼굴은 무리뉴를 최고의 감독으로 만든 요소들이다.

하지만 무리뉴가 이탈리아 인터 밀란으로 떠나버린 지금,프리미어리그에서 남성패션의 공식을 가장 잘 지키는 감독은 바로 알렉스 퍼거슨 경이 아닐까 싶다. 다소 뚱뚱한 몸매(한국의 CEO뿐 아니라 중년 남성들의 일반적인 보디라인)를 지닌 노년의 이 명장은 시간.장소를 불문하고 항상 품위 있는 복장을 고수한다.

완고한 스코틀랜드 출신으로 잘 재단된 네이비 컬러 싱글 수트와 팬츠에 윙팁 슈즈를 매치한다. 플래피 룩(아이비리그 스타일 캐주얼)과도 일맥상통하는 그의 패션은 고풍스러운 휘장이 장식된 블레이저(스포츠 재킷)나 더블 브레스트(일명 더블) 재킷과 따뜻해 보이는 니트 카디건 등 여유로운 분위기가 느껴진다. 정통 신사 스타일을 고집하는 퍼거슨은 헤링본이나 캐시미어 같은 고급 소재를 특히 선호한다.



말쑥한 뉴요커처럼,김성근 감독


피말리는 승부의 세계를 살아가는 감독들 중에는 유난히 빼빼 마른 체형을 종종 발견할 수 있다. 이런 몸매의 대표적인 인물이 퍼거슨 감독의 영원한 라이벌인 아르센 웽거 감독과 김성근 감독이다. 특히 칠순을 바라보는 김 감독은 자신에 대한 끊임없는 투자의 결실로 젊은이 못지않게 완벽한 몸매를 갖고 있다.

필자는 한창 '스포테인먼트'라는 기치 아래 성적과 인기 두 마리 토끼를 잡고 있던 김성근 감독을 만나 스타일링을 해준 적이 있다. 김 감독은 다소 키가 작고 왜소하다는 인상을 받았지만 워낙 얼굴이 작고 신체 비율이 좋아 준비해 간 모던한 느낌의 수트들이 무척 잘 어울렸다.

이런 체형이면 상하의 같은 컬러의 수트와 화이트 셔츠,그리고 깔끔한 타이와 드레스업 슈즈(끈을 묶는 정장구두)로 성공한 남자의 이미지를 완성시킬 수 있다. 경기 중 직접 그라운드에 들어가는 종목 특성상,야구 감독들은 모두 유니폼을 입기 때문에 축구 감독처럼 그들의 패션 센스를 뽐낼 기회가 드물다. 하지만 유니폼이 아닌 수트를 입은 김 감독의 모습은 성공한 뉴요커의 모습 그 자체였다.

냉정한 비즈니스 세계의 팀인 기업을 지휘하는 CEO는 여러모로 스포츠 감독과 닮았다. 팀에 조금이라도 보탬이 된다면 화려한 조명 아래 분장을 하고 웃음짓는 일도 마다하지 않는 게 오늘날 스포츠계의 트렌드다. 따라서 지금까지 자신을 가꾸기에 다소 소홀했던 CEO들에게 스포츠 감독들의 멋진 모습은 좋은 자극제가 될 것이다. 물론 그 전에 먼저 자신의 체형이 '퍼거슨형'인지,'김성근형'인지부터 파악해야 한다.

'하퍼스 바자' 패션에디터 kimhyeontae@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