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맨 아이디어를 춤추게 하라"
李전 회장의 '창조경영'으로 글로벌 위기 정면 돌파 시도
일부 계열사들 시범 도입


삼성그룹 일부 계열사들이 경쟁력 향상을 위해 기존의 피라미드형 조직을 네트워크형 조직으로 전환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부장→차장→과장→대리로 이어지는 직급에 얽매이지 않고 같은 그룹 내 구성원이라면 누구나 동등한 권한과 역할을 갖고 일하게 한다는 게 편제 개편안의 핵심이다. 이 같은 움직임은 유례없는 글로벌 금융위기를 맞아 많은 기업들이 조직개편을 모색하고 있는 가운데 나온 것이어서 주목된다.

삼성 관계자는 29일 "기존의 피라미드식 직급체계가 직원들의 창의성 분출과 실행능력 확대에 장애가 된다고 판단해 일부 계열사들을 중심으로 조직을 수평적 네트워크 방식으로 전환하는 방안을 강구하고 있다"며 "통상 부장급이 담당하는 그룹장(파트장) 휘하의 직원들은 동등한 위치에서 서로 협력하는 방식으로 업무를 추진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 같은 방안은 네트워크 조직으로의 개편이 쉬운 본사와 연구개발(R&D) 조직에 시범 적용될 예정이며 여건 변화에 따라 단계적으로 확산될 전망이다.

◆조직편제 왜 바꾸나

삼성이 네트워크 조직으로의 전환을 시도하는 이유는 상명하복식 일사불란함을 강조해 온 현 조직 형태가 외적-내적으로 심각한 도전에 직면하고 있다는 판단에 따른 것으로 풀이된다.

삼성은 글로벌 금융위기가 실물 위기로 확산되고 있는 상황에서 자칫 글로벌 톱의 반열에서 이탈할 수도 있다는 위기감에 휩싸여 있는 게 사실이다. 이건희 전 회장의 전격적인 퇴진 이후 그룹의 구심력과 일체감이 약화되고 있는 상황도 조직 개편을 모색하는 요인이 된 것으로 풀이된다. 한마디로 내부 변화의 동력을 찾아내기 위한 카드로 '네트워크 조직'을 꺼내들었다는 얘기다.

◆네트워크 조직의 장점은

삼성은 수평적 네트워크 조직을 도입할 경우 다양한 아이디어 분출과 빠른 의사결정이 이뤄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제품에 대한 고객들의 충성 기간이 짧아진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는 창의성과 스피드가 경쟁력을 유지하는 관건이라고 본 것이다.

기존의 피라미드 조직에선 다양한 아이디어가 나오기 힘들다는 게 학계의 정설이다. 직급에 따라 업무 범위가 정해져 있기 때문이다. 의사결정 과정도 복잡하다. 하지만 수평적 조직에서는 노동의 질적 유연성이 훨씬 높아진다. 사원이 그룹장에게 바로 아이디어를 제시할 수 있기 때문에 업무처리 속도가 훨씬 빨라진다. 한번에 두세 가지 업무를 처리하는 멀티플레이어를 육성하는 것도 상대적으로 용이하다.

◆'창조경영'의 구현

조직개편은 2007년 초 이건희 전 회장이 주창했던 '창조경영'과도 맥이 닿아 있다. 당시 이 전 회장은 "지금까지는 선진 기업들을 벤치마킹하는 것만으로도 기업을 성장시킬 수 있었지만 이제 상황이 바뀌었다"며 "나아갈 방향을 스스로 판단해 결정하기 위해서는 창조적인 경영을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했었다.

삼성식 창조경영은 이 전 회장이 삼성특검 등으로 경영일선에서 물러나면서 구체적인 실행방안 없이 구호에만 머물고 있는 상태였다. 따라서 편제 전환은 '이건희'와 전략기획실로 대표되는 강력한 구심점이 없는 상황에서 편제의 소프트웨어 변화를 통해 창조경영 구현에 한걸음 더 다가서겠다는 전략으로 해석된다.

삼성 관계자는 "상당수 글로벌 기업들이 네트워크형 편제를 채택하고 있다는 점도 감안했다"며 "이 편제는 자유롭게 생각하고 일하면서 환경 변화에 발빠르게 대응할 수 있다는 이점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송형석 기자 clic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