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러화 강세, `마진 콜' 압박에 줄이은 매도
"투자자들 부엌 싱크대까지 팔고 있다"


금은 경제가 어려워지면 항상 상승하는 경향이 있었다.

유동성 과잉 현상이 빚어지면 상품 시장에 거품이 발생하지만, 금은 안전하다는 인식이 확산돼 있었기 때문이다.

안전 자산 선호 현상이 바로 그것이다.

현재 지상에 있는 16만t의 금 가운데 약 12% 만이 전자나 다른 산업에 사용되고, 나머지는 대부분 귀금속이나, 투자 수단으로 활용되고 있다.

이 때문에 금은 경제위기의 면역지대로 인식돼 왔고, 그 가치가 다른 상품들과 다른 방향으로 움직이는 속성을 지녀왔다.

지난 3월 베어스턴스가 무너진 직후 금 값은 사상 처음으로 온스당 1천 달러를 돌파했다.

또 지난 9월 리먼 브러더스 파산보호 신청 직후에도 금 값은 900달러 이상을 유지하며 고공 행진을 거듭했었다.

그러나 최근 금 값은 이 전통적 관행과는 거꾸로 가고 있다.

실물 경제가 어려워지고, 경제 위기가 현실로 다가오고 있지만, 금은 최저치를 향해 곤두박질 치고 있다.

유가나 구리와 같은 다른 상품들과 마찬가지로 하락세를 면치 못하고 있는 것이다.

23일 뉴욕상업거래소에서 12월 인도분 금 값은 온스당 20.50달러(2.9%)가 떨어진 714.70 달러로 내려갔다.

금 값은 장중 한 때 온스당 695.20 달러까지 내려가면서 지난해 9월 이후 처음으로 700달러 밑으로 내려갔다.

지난 8일 이후 금은 11 거래일중 10일간 가격이 하락해 온스당 190달러 이상이 떨어졌다.

금 값이 이처럼 떨어지고 있는 가장 큰 이유는 달러화의 강세 때문이라고 전문가들은 진단한다.

월드 골드 카운슬의 나탈리 뎀프스터 애널리스트는 마켓워치에 "금은 달러와 정반대 방향으로 움직이는 경향이 있다"면서 "달러화가 오르면 대체 투자수단으로서의 금의 매력은 떨어질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최근 유럽 경제가 침체되면서 미국보다 신용위기 회복이 늦어질 것이라는 전망 속에 유로화 가치가 떨어지고 있는 것이 금 값 하락의 주범이라는 얘기다.

불과 몇 주전만 해도 1유로당 1.5달러 였던 달러화는 최근 1유로당 1.3 달러 밑으로 내려가면서 가치가 폭등했다.

이날 뉴욕 외환시장에서 달러는 유로화에 대해 1 유로당 1.2847 달러에 거래됐다.

여기에 최근 펀드들이 붕괴되면서 이른바 `마진 콜'로 인해 현금 마련이 급해진 부호들이 금 선물 계약을 내다 팔 수 밖에 없도록 만드는 상황을 초래한 것도 금 값 폭락의 주 요인으로 꼽힌다.

마진콜은 증거금 부족이 발생할 경우 이에 대한 확충을 요구하는 것으로 주식시장에서도 신용거래를 위해 최소한의 요구비율에 따라 개시증거금을 쌓아야 한다.

따라서 주가가 급락할 경우 증거금 비율이 낮아지면서 마진 콜이 발생하게 된다.

아고라컴의 수석 코멘테이터인 피터 그란디시는 "전세계 투자가들은 부엌 싱크대를 포함해서 모든 것을 팔고 있다"면서 "금도 거기서 예외는 아니다"고 말했다.

또한 이머징 마켓의 금 수요가 이들 시장의 통화 약세로 억제되고 있는 것도 금 값 하락의 한 요인으로 꼽히고 있다.

더 불리온 데스크 닷 컴의 제임스 무어 애널리스트는 "최근 경제 상황은 인플레이션 보다는 디플레이션쪽으로 작동하고 있고, 달러 가치가 높아지면서 금 가격의 상승을 억누르고 있어 당분간 금 값은 하락 세를 면키 어려울 것"이라고 내다봤다.

(뉴욕연합뉴스) 김현재 특파원 kn0209@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