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ㆍEU선 중앙銀까지 나서 기업 지원 하는데

지난달 16일 리먼브러더스 파산 이후 세계 각국은 글로벌 금융위기의 확산을 막기 위한 갖가지 대책을 내놨다. 금융위기의 진앙지인 미국이 가장 먼저 7000억달러의 구제금융 지원 조치를 발표하자 뒤를 이어 영국과 독일 프랑스 등 선진국들도 잇단 위기 안정 대책을 발표했다. 특히 선진국들은 금리 인하 등에 있어서는 확실한 공조체제를 구축하기도 했다. 이에 맞춰 우리 정부도 각종 금융위기 극복 대책을 제시하고 있지만 적절한 시기에 근본적인 대책을 못 내놓고 있다는 지적이 적지 않다.

◆발빠른 주요국들의 위기 대응

지금까지 나온 선진국들의 금융위기 대응책의 핵심은 '선제적 방어'로 요약된다. 초기에는 미적거려 비판을 받기도 했지만 일단 발을 들여놓고 난 뒤에는 전격적인 조치들을 쏟아냈다. 조기에 금융시장 불안을 잠재워 실물경제로의 전이를 막기 위해 미국과 유럽연합(EU) 국가들은 △은행 간 채무보증 △예금 보장 한도 확대 △은행에 대한 직접적인 자본 투입 △은행 유동성 공급 확대 △금리 인하 △증시 안정대책 등 각종 대책을 잇달아 발표했다.

은행 간 채무보증의 경우 지난달 말 아일랜드가 처음으로 실시한 이후 각국으로 확산됐다. 영국이 지난 8일 2500억파운드를 은행 채무 지급보증에 투입키로 했으며 독일 프랑스 스페인 등도 13일 각각 4000억유로,3200억유로,1000억유로의 지급보증 계획을 발표했다. 미국도 14일 은행들의 선순위 무담보채권에 대해 지급보증한다는 방안을 내놨다. 각국은 은행예금 보장 한도도 확대하는 추세다. 미국이 내년 말까지 한시적으로 예금 보장 한도를 현행 10만달러에서 25만달러로 높인 데 이어 EU도 2만유로에서 5만유로로 보장 한도를 높였다. 이 밖에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는 8일 유럽중앙은행(ECB)을 비롯한 7개 중앙은행과 정책공조를 통해 동시에 금리를 낮추는 대책도 내놨다. 여기에는 중국 중앙은행도 동참했다. 또 증시 안정을 위해 미국이 지난달 19일 금융주에 대한 공매도를 한시적으로 금지하는 조치를 취한 데 이어 영국도 같은 달 18일 내년 1월까지 공매도를 금지한다는 대책을 내놨다.

◆그러나 한국은…

이 같은 각국의 움직임에 맞춰 우리 정부도 지금까지 각종 금융시장 안정 대책을 발표했다. 하지만 대책을 내놓는 '타이밍'이 늘 한발씩 늦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대표적으로 은행 외화 차입에 대한 지급보증을 들 수 있다. 세계 각국은 자국 은행들이 심각한 유동성 위기에 직면하자 이달 초부터 모든 은행 간 거래에 대해 정부가 지급보증을 서 주겠다는 방침을 발표했다. 지난 8일 영국이 이런 조치를 내놨으며 미국 독일 프랑스 호주 등도 이에 동참했다. 각국의 이런 조치에 국내 은행들은 "외화 차입에 역차별이 발생할 수 있다"며 서둘러 대책을 마련해줄 것을 요구했지만,우리 정부는 19일에야 '은행 외화 차입 지급보증' 방침을 확정했다.

'금리 인하'도 마찬가지다. 금융시장 불안으로 경기 둔화 우려가 커지자 호주를 비롯한 미국 영국 캐나다 스웨덴 스위스는 7~8일 0.25~0.5%포인트씩 금리를 낮췄다. 한국은행도 어쩔 수 없이 9일 금리를 0.25%포인트 낮췄다.

익명을 요구한 민간연구기관 관계자는 "금융위기 초기에는 우리 정부의 대응이 한발 늦어도 별 문제가 없을 수 있겠지만 지금은 글로벌 금융위기의 여파를 실시간으로 받는 단계"라며 "필요하다면 금융시장 안정과 실물경기 부양을 위한 선제적인 대응도 고려해봐야 한다"고 말했다.

이태명 기자 chihir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