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일 증시는 오후 1시부터 장 마감 시간인 오후 3시까지 공포의 두 시간을 보냈다. 외국인의 매물 공세에다 점심시간 이후 일본 닛케이평균주가의 급락과 국내 기관투자가의 로스컷(손절매) 물량이 쏟아지자 코스피지수는 매수 공백으로 저항 없이 일시에 추락해 한때 3년2개월 만에 1100 밑으로 떨어지는 등 '패닉'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이날 코스피지수는 막판 연기금의 주가 방어 덕에 낙폭을 줄여 61.51포인트(5.14%) 하락한 1134.59에 마감,2005년 9월6일 이후 3년1개월 만에 최저치를 기록했다. 오현석 삼성증권 투자정보파트장은 "이젠 시장에 항복했다"며 속수무책인 현실을 괴로워했다.
주식시장은 미국 다우지수가 기업 실적 악화로 2.50% 하락했다는 소식에 불안하게 출발했다. 오전장까지는 그나마 개인들이 꾸준히 사들이며 낙폭을 30포인트 수준에서 힘겹게 지켜냈다. 하지만 아르헨티나의 부도 위기설에 이어 국제통화기금(IMF)이 "유럽 은행들도 무너질 수 있다"는 경고를 하면서 시장이 급락세로 돌아섰다.
엔화 강세에 화들짝 놀란 일본 닛케이평균주가마저 6%대로 낙폭을 키우면서 코스피지수도 덩달아 곤두박질쳤다. 일본 엔 캐리 트레이드 자금이 본국으로 회귀하면서 북유럽 아시아 등 이머징 국가의 금융위기가 심화될 것이라는 불안감이 확산된 것이다. 조익재 하이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은 "오후에 예정됐던 기관 대상 투자설명회가 갑자기 취소되면서 발길을 돌렸다"며 "일본 엔화 강세로 일본 수출 기업이 더 이상 버티기 힘들 것이라는 분석까지 나오고 있다"고 우려했다.
오후 1시50분을 지나면서부터는 지수가 수직낙하했다. 아무도 떨어지는 칼날(지수)을 잡으려 하지 않았다. 오후 2시께 기관들의 로스컷 물량까지 더해지자 1130선이 맥없이 무너졌다. 또 현·선물간 가격차인 시장베이시스가 악화되며 프로그램 매물도 흘러나왔다. 이 무렵 유가증권시장은 올 들어 9번째로 선물가격 급변동에 따라 프로그램 매매 호가를 정지하는 사이드카가 발동됐다.
이승우 대우증권 연구위원은 "증권사들이 선물을 매도하면서 차익 프로그램까지 순매도로 전환되며 수급은 더욱 나빠졌다"며 "1년 만에 지수가 고점 대비 반토막나면서 심리적으론 이미 외환위기 상황을 경험하고 있다"고 말했다.
오후 1시50분 이후 불과 40분 만에 지수는 1095까지 60포인트 가까이 주저앉았다. 코스피지수 1100선이 무너진 건 2005년 8월31일 이후 처음이다. 유가증권시장과 코스닥시장 내 하한가 종목만 86개에 달했고 양 시장의 약 2000개 종목 중 상승한 종목은 230여개에 불과했다.
오 파트장은 "일본이 먼저 빠지고 우리가 따라가는 형국이었다"며 "어느 누구도 '사자'는 세력이 없다 보니 쏟아지는 매물에 지수는 곤두박질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정부의 금융시장 안정대책이나 건설경기 부양책에 대한 실망감에다 추가로 나올 카드가 별반 다를 게 없을 것이라는 불안감도 투자심리를 위축시켰다.
이번에도 증시를 나락의 수렁에서 건져낸 것은 연기금이었다. 코스피지수 1100선이 무너지자 연기금은 시가총액 상위 종목을 중심으로 사들이며 지수 흐름을 되돌렸다. 연기금은 장 마감 30여분간 1500억원어치를 사들이는 등 총 1821억원어치를 순매수,단숨에 40포인트나 낙폭을 줄였다. 이날 외국인은 3563억원어치를 순매도한 반면 개인은 3357억원어치를 순매수했다.
허필석 마이다스자산운용 주식운용본부장은 "공포와 패닉이 시장을 지배하고 있다"며 "지수가 추가로 얼마나 더 빠질지 누구도 예측할 수 없다"고 말했다. 박건영 트러스톤자산운용 대표는 "지수 1100선 아래는 국내 기업들이 모두 청산가치 아래로 떨어지는 구간으로 합리적인 설명이 불가능하다"며 "투자심리의 회복이 급선무"라고 말했다.
서정환 기자 ceose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