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과 비현실이 뒤섞인 이 시스템을 위해 사용된 컴퓨터는 총 154대.무선으로 연결된 네트워크를 통해 신호를 주고받는다. 입구에 서 있는 'Mr.포테이토 헤드' 인형은 수많은 관객 중 자신에게 말을 건 사람을 찾아 내 눈동자를 돌리면서 대답해 아이들을 기쁘게 한다. 쌍방향성을 강화한 이 놀이기구는 '중독적'이라는 평가를 받을 정도로 폭발적인 인기를 누리고 있다.

◆창조적 인재,그들은 마법사다


이 기구를 개발한 곳은 미국 캘리포니아 글렌데일에 있는 월트 디즈니 이매지니어링센터(WDI).꿈을 현실로 만들고 있는 디즈니 월드의 심장부다. 1960년대 로봇이 자동으로 움직이고 사람에게 말을 거는 '오디오-애니매트로닉스' 기술과 3D 이미지를 영화로 만드는 '스릴레마 기술'을 처음 선보인 곳도 이곳이다. 2차원 평면의 단순한 캐릭터였던 미키 마우스와 도널드 덕,백설공주와 신데렐라,'토이 스토리'의 우디와 버즈 등이 3차원 현실로 살아난 것도 이곳을 통해서다. 따지고 보면 이름부터가 창조적이다. 풍부한 상상력(imagination)과 빼어난 기술력(engineering)을 결합했으니 말이다. WDI의 브루스 본 창조성부문 최고책임자(CCE)는 "WDI에는 전 세계에서 가장 창조적인 사람들이 모여 있다"며 "매일 매일 예술과 과학을 결합해 꿈과 환상을 현실로 만드는 우리는 마법사"라고 정의했다.

이곳에서 일하는 '이매지니어(imagineer)'들은 모두 700여명.세계 각국의 테마파크 현장에서 일하는 400여명을 합하면 1100여명에 달한다. 이들은 디즈니의 전 세계 테마파크와 리조트를 디자인한다. 화려하고 정교한 불꽃놀이 시스템을 만드는 것이나 성의 첨탑 주변을 자유롭게 오르내리는 팅커벨의 가벼운 날갯짓,갑작스레 눈을 떠서 관광객을 향해 목을 빼고 다가오는 공룡의 역동적인 움직임도 모두 이매지니어들의 몫이다. 최근 디즈니사의 주요 수입원이 된 영화 제작 과정에 필요한 각종 신기술 개발과 이를 현실 세계에 다시 구현하는 것 역시 이들이 담당한다.

◆'토이 스토리 마니아'도 엉뚱한 상상에서 나왔다

이매지니어들에게 가장 중요한 덕목은 '창조성'이다. 디즈니는 직원들의 아이디어가 아무리 좋지 않더라도 내치지 않는다. 오히려 마음껏 발산하도록 독려한다.

'토이 스토리 마니아'도 이렇게 생겨났다. 이매지니어인 케빈 래퍼티는 2005년 "'토이 스토리'의 인형이 된 것처럼 느끼게 하는 가상 현실 게임을 만들자"고 제안했다. 그의 아이디어는 쇼 프로듀서인 크리시 앨런과 엔지니어 존 누난에게 곧바로 제공됐다. 이들은 각각 구체적인 스토리와 기술로 아이디어에 살을 입혔다. 디즈니가 인수한 픽사의 컴퓨터 그래픽팀이 이들을 도왔다. 이 과정에서 래퍼티에게 이의를 제기한 사람은 없었다. 누난씨는 "토이 스토리 마니아와 같은 놀이기구는 고도의 기술을 요구했기 때문에 많은 어려움이 있었던 것이 사실"이라며 "그렇다고 차근차근 쌓아 올리던 벽을 도로 부숴 버리려고 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고 설명했다.

◆협업을 통해 '창조적 가족'이 된다

만약 아이디어를 당장 현실화하기 힘들면 WDI는 아이디어 뱅크인 '아카이브'에 보관한다. 온라인 아카이브에서는 과거 디즈니 구성원들이 내놓은 아이디어를 모두 검색할 수 있다. 오프라인 아카이브에는 이매지니어들이 만들어 낸 각종 아이디어 스케치북,미완성 캐릭터,플라스틱 모형 등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아이디어 개발이 벽에 부딪칠 때면 늘 아카이브를 참고하고 이 중 일부는 많은 시간이 흘러 현실화된다"는 게 브루스 본의 설명이다.

브루스 본이 꼽는 WDI 창조성의 비결은 '협업'이다. 이매지니어 한 명이 자신의 '상상'이 현실화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누군가 그것을 도와줄 것임을 알기 때문이라는 것."이매지니어들의 작업 영역은 무려 140여 가지에 이르기 때문에 독불장군형 이매지니어는 상상할 수도 없다"고 그는 강조했다. "우리는 서로를 '가족'이라고 부릅니다. 늘 같이 작업하는 것이 일상화돼 있어서 관계가 친밀할 수밖에 없지요. " 하나 하나가 창조적 인재들인 이매지니어들이 가족으로 뭉쳐 있으니 창조적 조직이 되지 않을 수 없다.

글렌데일(캘리포니아)=이상은 기자 se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