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위기 실물경제로] 서소문 유명 음식점 "2층 큰방에 점심손님 달랑 두 테이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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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5일 점심시간,서울 중구 서소문동의 유명 음식점 K식당.평소 홀이 아닌 방에 앉으려면 예약이 필수일 정도로 북적대던 곳이지만 이날은 빈 자리가 태반이다. 특히 2층 큰 방에서 식사를 하는 손님은 달랑 두 테이블뿐이었다. "요 며칠 새 환율과 주가 변동이 심해지면서 금융회사 손님들의 발길이 뚝 끊어졌습니다. 점심 때도 못 나오시나봐요. 그 바람에 손님이 30% 정도는 준 것 같습니다. "(점장 서모씨)
같은 시간,K식당에서 200m가량 떨어진 삼성공제회관 내 구내식당.식판을 들고 길게 줄을 서 있는 모습이 썰렁한 K식당과는 사뭇 대조적이다. 삼성 계열사 직원들만 이용하는 이곳의 점심 식대는 일반 음식점의 반값 수준인 3000원.삼성생명 직원 김모씨(여)는 "평소에는 일주일에 한두 번은 밖에 나가 음식점에서 먹었다"며 "그러나 푼돈이라도 아껴야겠다는 생각에 이번 주에는 내내 구내식당만 찾고 있다"고 말했다.
자영업자들의 한숨소리가 곳곳에서 터져 나오고 있다. 청담동의 고급 미용실에서 변두리 동네 중국집,슈퍼에 이르기까지 현장 경기는 전방위로 추락하고 있다. 주가가 폭락하면서 중산층의 소비심리도 더욱 얼어붙어 금융위기의 한파가 이제는 생활 현장에까지 본격적으로 몰아치는 모습이다.
○…중림동의 대형 S사우나. 서울역에 내린 여행객이나 남대문시장을 들른 지방 상인들이 많이 찾는 곳으로 유명한 이 사우나는 요즘 손님들의 발길이 줄면서 매출 부진으로 울상이다. 사우나 내에서 이발소를 하는 전모씨는 "전에는 한 달에 한번 오던 손님이 요즘은 한 달 반이 지나야 오는 것 같다"며 "하루 20명이던 이발 손님이 10명 밑으로 뚝 떨어졌다"고 한숨을 쉬었다. 또 목욕관리사 이모씨는 "목욕탕에 와서 때도 안 미는지 세신 손님이 20~30% 줄었다"며 "4만원짜리 마사지 손님은 아예 없다"고 말했다.
동네 소형 목욕탕들의 사정은 더욱 열악하다. 이문동에서 H목욕탕을 운영하는 이모씨는 "하루 매상이 아침에 물 데우는 비용 정도만 간신히 건지는 수준"이라며 "이문동 일대 4개 목욕탕 중 우리 빼고 3개가 다 문을 닫았다"고 전했다.
○…동네 슈퍼마켓 주인들은 물가 상승에 '멜라민 파동'까지 겹쳐 "죽겠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사는 분위기다. 아현동 J마트 주인 김모씨는 "과자 하나 팔면 50원 정도 남는데 전에는 그나마 하루 200봉은 팔았다"며 "멜라민 파동 이후에는 하루 10봉도 안 나간다"고 말했다. 김씨는 "기름값,밀가루값 인상으로 대리점의 공급가격은 오르고 매상은 줄어 빚을 내 물건을 받는 형편인데 구청 직원이 찾아와 유통 금지 품목 명단만 던져놓고 갔다"고 하소연했다.
상계2동 K마트 주인 한모씨는 "대리점에서 물건을 납품받고 내는 대금은 늘었는데 받는 물량은 오히려 줄었다"며 "여기에 손님은 작년보다 40%나 줄어 폐업을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다"고 토로했다.
○…주부들이 주 고객인 동네 미용실은 물론 잘 나가던 강남의 대형 미용실들마저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연예인이 많이 찾는 청담동의 K미용실도 최근 매출이 30%나 급감했다. 이 미용실 직원 조모씨는 "연예인들이야 직업 특성상 여전히 자주 오지만 일반 고객의 경우 한 달에 두세 번씩 오던 손님이 최근에는 한 번 정도로 발길이 줄었다"고 말했다. 그는 "불경기는 강남도 예외가 아니어서 청담동 일대의 다른 미용실도 사정은 마찬가지"라고 전했다.
신도림동의 S네일숍 직원 이모씨는 "예전에는 주말에 바쁠 때 밥 먹을 시간,물 마실 시간이 없을 정도로 일이 많았는데 최근 2~3개월 전부터는 여유있게 밥먹는 것은 물론 미니홈피를 관리할 시간까지 있을 정도로 한가해져 월급 타가기가 미안하다"고 말했다.
○…짠돌이 직장인이 늘면서 사무실이 몰려 있는 시내 중심가 분식집들마저 타격을 입고 있다. 서소문동 A분식점 주인 김모씨는 "주변에 워낙 사무실이 많아 점심 손님은 전과 비슷하지만 아침에 김밥 사가는 손님과 간식거리로 떡볶이 포장해가는 사람이 크게 줄었다"며 "직장인들이 이제는 군것질도 안 하는 것 같다"고 전했다.
중국음식점들도 울상을 짓기는 마찬가지.이문동 한국외대 앞에서 중국집을 운영하는 김모씨는 "대학가에 있는 덕에 주택가 중국집들보다 사정이 낫긴 하지만 우리 역시 20% 정도는 매상이 줄었다"며 "밀가루값 인상으로 자장면 값이 많이 올라 비슷한 가격대의 기사식당 등에 손님을 뺏기고 있다"고 말했다.
○…웰빙 열풍 속에 회원이 크게 늘어 러닝머신 앞에 줄을 서야 했던 스포츠센터들도 찬바람을 맞고 있다. 신도림동에서 대형 스포츠센터를 운영하는 이모씨는 "주변에서 가장 큰 규모여서 외환위기 때도 끄떡 없었는데 올 들어 회원이 줄기 시작하더니 요즘은 탈퇴하는 회원만 있을 뿐 신규 회원은 아예 찾아볼 수 없는 실정"이라며 울상을 지었다.
최재희 한국창업컨설팅그룹 대표컨설턴트는 "소비심리가 완전히 얼어붙으면서 한계상황에 다다른 '깡통점포'가 급증하고 있다"며 "창업 문의는 실종된 채 폐업 문의만 쇄도하는 형편"이라고 전했다. 최 대표는 "앞으로 고용 불안까지 겹쳐 소비심리는 더욱 냉각될 것으로 보인다"며 "현장경기의 어려움은 내년까지 이어질 것"으로 전망했다.
윤성민 기자 smyoon@hankyung.com
정원하(한국외대 대학원 2학년)/김정환(한국외대 4학년) 인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