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일 오후 2시 서울 여의도 A단란주점의 3호실.정장 차림의 신사들이 하나둘 들어온다. 손에는 조그만 서류가방이 하나씩 들려 있다. 소위 '선수'들이다. 커피를 시켜 놓고 소란스럽게 인사를 주고받더니 누군가 "이제 시작하시죠!"라고 말하자 금세 긴장감이 감돈다. 그룹사 B차장부터 한 명씩 발제한다. "이번 국감에서 모그룹 회장이 참고인으로 불려나올 뻔했다가 가까스로 막았다"는 등 정치권 뒷이야기부터 기업 동향 등 언론에서 나오지 않은 얘기들이 오간다.

한 정보모임의 장면이다. 이날 모임에는 기업체 정보 담당직원 2명,국회의원 보좌관과 기자,증권사 직원이 1명씩 나왔다. 제각기 4~5건씩 정보 보따리를 풀어놓으며 철저하게 '주고받는' 식으로 진행됐다. 이렇게 수집된 정보들은 각자 소속된 기관의 최고위층에 '직보' 형태로 전달된다.

◆사설정보지에도 등급이 있다

이렇게 만들어진 정보지들을 재가공한 사설정보지(찌라시)의 생명력은 얼마나 그럴싸하냐는 것.찌라시는 '뿌리다' '돌리다'는 뜻의 일본어 '찌라스'의 명사형이다. 그만큼 사실보다 더 사실 같아야 뿌려질 수 있다는 얘기다. 진실 여부를 떠나 신문이나 방송이 다룰 수 없는 숨겨진 뒷얘기를 가감 없이 전달해준다는 점이 찌라시의 경쟁력이다.

그러나 최근 들어 찌라시의 신뢰도가 떨어지고 있다는 평가다. 검찰 관계자도 "80%는 소설 같은 얘기들"이라고 말했다. 특히 흥미를 유발하는 정보일수록 기업이미지나 개인명예를 훼손할 가능성이 높다. 고(故) 최진실씨, 나훈아씨 관련 괴담이 대표적이지만 이는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

메신저의 영향력에 대한 논문을 쓴 송치호 KB투자증권 홍보실장은 "신뢰도가 낮고 명예훼손 혐의가 농후한 흥밋거리가 일반인에게 폭넓게 전파되면서 심각한 부작용을 낳는다"고 말했다.

때문에 정보지를 모두 찌라시로 부르면서 폐기 대상으로 간주해선 안 된다는 주장도 만만찮다. 한 기업 정보 담당자는 "고급 정보와 시중에 떠도는 저급 정보는 구별돼야 한다"며 "고급 정보는 사실로 완전히 확인되지 않았더라도 진실일 가능성이 높아 기업경영 활동에 큰 도움을 주기도 한다"고 말했다.

과거 정보지에 대형 특종도 심심찮게 나왔는 점이 이를 뒷받침한다. 한보철강 등 주요 기업의 부도 사실은 실제 사건이 터지기 훨씬 전부터 정보지에 오르내렸고 김영삼 전 대통령의 아들 현철씨의 국정 농단 사실도 정보지가 먼저 전해줬다.

조대엽 고려대 사회학과 교수는 "역사적으로 봐도 정보 자체를 병리적으로 보고 근절하고자 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며 "정보의 품질을 판단하는 소비자들이 저급 정보를 걸러낼 수 있는 능력을 갖추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사설정보지 어떻게 만들어지나

오너가 있는 기업일수록 강한 정보팀을 갖고 있다는 것이 정설이다. 특히 삼성의 정보력은 국정원 못지 않다는 얘기는 오래 전부터 증권가에서 나돌았다. 하지만 자체 정보팀 가동이 어려운 기업이나 단체는 정보를 사서 볼 수밖에 없다. 이들을 겨냥한 상품이 바로 유료 사설정보지다. 사설정보지의 제작 경로는 철저하게 베일에 가려져 있지만 통상의 정보 모임을 기반으로 만들어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 정보모임에 참석하고 있는 기업 관계자는 "여러 정보모임에서 나온 자료들을 짜깁기한 것이 사설정보지로 탈바꿈한다"며 "사설정보지들의 내용이 절반 이상은 겹친다는 점이 이를 뒷받침해준다"고 말했다.

일부 언론사가 '경영 보고서' 같은 형태로 고급 정보지를 만드는 경우도 있다. 한 일간지는 기자들의 고급 정보를 추려내 'CEO 리포트'라는 이름으로 기업체 등에 수년째 판매하고 있다.

매주 또는 격주에 한 번씩 나오는 사설정보지의 1년 구독료는 보통 300만~600만원.그런데도 독자층은 매우 두텁다. 한 코스닥 상장사 CEO는 "골프장 모임이나 술자리에 가서 정보지에 나오는 얘기를 모르고 있으면 대화에 낄 수 없을 때가 있다"고 말했다.

조진형 기자 u2@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