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가의 코스모스를 보고

가슴이 철렁했다

나에게 남은 날이

많지 않다

선득하니,바람에 흔들리는

코스모스 그림자가 한층 길어졌다

정희성 '가을날' 전문

하늘은 높아가고 물빛은 깊어지고 있다. 들녘에는 마른 잎 냄새가 떠돈다. 옷깃을 파고드는 선득한 바람.구절초 산국 쑥부쟁이 등 스스로를 낮춘 가을 꽃들이 단아한 자태를 드러낸다. 무엇보다도 코스모스가 긴 그림자를 드리우기 시작했다. 가을이 온 것이다. 생의 남은 날들은 누구에게나 짧다. 젊으나 늙으나 마찬가지다. 딱히 무엇을 하겠다는 목표가 없어도 문득 세월의 흐름을 느끼면 괜히 가슴이 철렁한다. 생에 대한 이 막무가내의 집착이 신비로울 뿐이다. 살아갈 날이 남아 있다는 것은 그 만큼의 어려움과 의무가 따른다는 뜻인데도 그렇다. 안팎으로 어수선한 가운데 다시 가을을 맞는다.

이정환 문화부장 jh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