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시작이다] 길은 험해도 '글로벌 뱅크'로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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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銀, 31개국 120개 점포 운영…금융위기로 M&A 기회
은행들은 국내 금융시장의 경쟁 격화와 성장 잠재력 악화에 직면,해외로 눈을 돌리고 있다.
민유성 산업은행장,김승유 하나금융지주 회장,이팔성 우리금융지주 회장 등이 성장 동력을 해외에서 찾겠다는 뜻을 피력한 바 있다. 하지만 국내 은행의 해외 진출은 아직 걸음마 수준이며 특정 지역에 편중돼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최근의 글로벌 금융위기로 인해 대형 매물이 쏟아져나오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과감한 인수·합병(M&A) 시도가 없다는 점도 아쉽다.
◆멀고 먼 글로벌화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 6월 말 현재 국내 은행들은 31개국에 총 120개의 해외 점포(영업점 94개,사무소 26개)를 운영하고 있다. 외환위기 이전인 1997년(257개)과 비교하면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다. 국내 은행들의 전체 순이익에서 해외 영업점이 차지하는 비중도 3.9%에 그쳤다. 도이체방크(72.6%) 크레디트스위스(69.5%) UBS(41.3%) 등 글로벌 은행들과는 비교조차 힘들다.
지역적 쏠림 현상 역시 문제점으로 지적되고 있다. 2001년 48%에 불과했던 국내 은행 해외 점포의 아시아 비중은 올해 6월 64.1%까지 증가했다. 아시아 시장에는 77개 점포가 몰려 있지만 유럽과 북미 지역에는 각각 21개와 15개 점포만 있다. 중국 동남아 등 특정 시장에만 몰림으로써 국내 시장에서의 과당 경쟁이 외국에서도 재현될 소지가 있는 것이다. 해외 점포가 현지에 진출한 국내 기업 및 교포를 대상으로 한 영업에 치중하기 때문에 토착화에 한계가 있다는 비판도 나오고 있다.
은행 해외 점포의 좁은 영업망도 글로벌화의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 씨티은행 HSBC 등 국내에 진출한 글로벌 금융사들은 최소 3개 이상의 금융업 인가를 받아 영업 중이다. 하지만 해외에 진출한 국내 은행들은 대부분 한 가지 금융업(예금과 대출) 인가만 받아 놓고 있는 상태다.
국내 은행 해외 점포의 현지 직원 채용 비중은 47.4%로 국내 외은 지점(97.5%)에 비해 낮다. 또한 국내 은행은 해외 점포에서 순환 근무제를 엄격하게 시행하기 때문에 국내 인력이 현지에서 네트워크를 구축하거나 실전 지식을 습득하기가 상대적으로 어렵다.
◆대형 매물 쏟아져 나오는데
리먼브러더스 파산으로 시작된 미국의 금융 위기를 일본과 유럽의 금융사들은 기회로 활용하고 있다. 한때 글로벌 금융시장을 주름잡았던 미국의 유명 투자은행들을 평소 가격의 10~20%에 살 수 있기 때문이다.
리먼브러더스의 주요 영업조직은 이미 영국 바클레이즈와 일본 노무라증권에 팔렸다. 모건스탠리는 일본의 미쓰비시UFJ와 중국 금융회사들의 투자를 받을 예정이다. 스페인의 산탄데르은행은 영국의 모기지업체 A&L을 인수한 데 이어 미국의 최대 저축은행 워싱턴뮤추얼 인수를 추진하고 있다. 골드만삭스는 일본의 미쓰이스미토모 금융그룹에 일부 지분을 넘기고 1조원 이상을 투자받기로 했다.
중국 역시 중국은행 중국인민은행 중국개발은행 CTIC그룹 등을 앞세워 미국은 물론 유럽과 아시아 시장에서 나오는 매물을 닥치는 대로 먹어치우고 있다.
이에 반해 국내 은행들은 조용하기만 하다. 민유성 산업은행장이 리먼브러더스 인수를 시도했다 엄청난 비판에 직면한 이후 금융사 최고경영자(CEO)들은 몸을 사리는 분위기이다.
시중 은행 관계자는 "중국이나 카자흐스탄 등지 금융회사에 대한 M&A는 꾸준히 이뤄지고 있으나 우리보다 선진 시장이라고 할 수 있는 미국과 유럽에 대한 투자는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면서 "산업은행이 단지 리먼브러더스 인수를 시도했다는 이유 하나로 정치권 등에서 엄청난 비판을 받고 있는 현 상황으로 미뤄볼 때 시중 은행들이 미국 등의 대형 매물을 M&A하기는 사실상 불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태훈 기자 bej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