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리' 의 힘

미국 제록스(Xerox)사의 팔로알토연구소(Parc)는 1973년 세계 최초로 그래픽방식(GUI)의 PC를 개발했다. 마우스 워드 프로세스 등 당시로는 혁신적인 기술들이 잇따라 세상에 나왔다. 하지만 제록스는 이 컴퓨터를 상용화하는 데 실패했다. 연구소는 다른 부서의 협력을 이끌어내지 못했고 마케팅 부서도 설득하지 못했다. 결국 제록스는 이 컴퓨터를 창고에 방치한 채 수익성이 검증되지 않은 기업용 워크스테이션 개발에 매달렸다. 그러나 1980년 팔로알토연구소를 방문한 애플의 창업자 스티브 잡스는 달랐다. 잡스는 제록스의 기술이 미래 황금알을 낳는 거위가 될 것으로 내다봤다. 몇 년 뒤 애플이 내놓은 매킨토시는 전 세계시장을 석권하며 잡스를 일약 세계적인 기업인 반열에 올려놓았다.


▶▶ 최고의 성과를 내려면 팀으로 움직여라

조직은 믿기 어려울 정도로 복잡한 업무를 처리한다. 누구든 혼자서는 그 일을 수행할 수 없다. 한 사람이 팀 전체에 영감을 불어넣을 수는 있지만 모든 일을 다 처리할 수는 없다. 그래서 팀으로 활동하는 것이다. 다른 대안은 없다. 조직 내에서 가장 이기적인 사람들조차 팀을 구성하지 않고는 일이 안 된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통상 팀원들에게는 역할이 부여된다. 업무에 칸막이가 생기고 책임소재가 가려져 있다. 문제는 구성원들의 자질과 특성이 천차만별이라는 데 있다. 어떤 사람은 창의적이고,어떤 이는 덜 창의적이며,또 다른 구성원은 차라리 관리형-방어형에 가깝다. 누구나 상호 협력의 필요성,그 중요성에는 공감하지만 도대체 어떻게 그것을 구현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정답이 없다. 한마디로 그때 그때 다르다.

바로 그런 사정 때문에 요즘 기업들은 하부 조직을 더욱 작고 수평적인 구조로 만든다. 팀워크가 이뤄지기 쉽고 의사결정도 빨라지기 때문이다. 좋은 조직은 겉으로 칸막이가 쳐져 있어도 내부적으로는 얇은 커튼이 드리워져 있을 정도의 근접성과 친밀성을 갖고 있다.


▶▶ 진정한 팀워크는 설득과 공감의 자리에 있다

하지만 작을수록 협력이 잘된다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다. 오히려 사소한 의견대립이 감정싸움 양상으로 번질 때도 적지 않다. 예를 들어 휴대폰 디자인을 놓고 A타입을 주장하는 사람과 B타입을 주장하는 이가 맞섰다고 하자.두 사람은 시장과 고객을 우선적인 고려 기준으로 놓을 것이다. 하지만 두 사람이 알고 있는 '시장'과 '고객'은 서로 다르다. 가만히 놔두면 평행선을 달릴 게 분명하다.

이때 팀워크가 작동해야 한다. 때로는 리더의 전격적인 개입으로 싱겁게 결판이 날 때도 있지만 그건 팀워크의 영역이 아니다. 진정한 팀워크는 설득과 공감의 자리에 있다. 두 사람은 자신의 의견을 입증할 수 있는 여러 가지 근거와 자료를 제시해야 한다. 팀원들을 상대로 자신의 아이디어와 실행 로드맵을 팔아야 한다. 이런 측면에서 팀도 하나의 시장이다.

승리는 '시장'에서 아이디어가 채택된 사람의 몫이지만 그렇다고 나머지 한 사람이 패자가 되는 것은 아니다. 마케팅에 실패한 팀원은 이제 최종 의사결정의 결과가 좋게 나오도록 실행에 힘을 보태야 한다. 그게 바로 팀워크다. 앞서 소니의 MP3 전략의 실패는 이런 과정을 거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그저 디자이너와 엔지니어가 어정쩡하게 타협했을 뿐이고,그것이 제품의 입체화·최적화로 연결되지 못했다.


▶▶ 조직 일에 냉소적인 좀비는 술집에서 기생한다

아프리카 들개 리카온은 사냥 전 반드시 작전회의를 한다. 10여마리가 서로 빙글빙글 돌면서 눈빛을 교환한다. 지휘자를 포함해 각자 역할이 주어지고 컨디션이 좋지 않은 리카온은 배제된다. 회의가 끝나면 찍어놓은 먹잇감을 향해 주저없이 돌진한다. 주로 영양이 타깃이다. 리카온 떼는 전격적으로 200㎏이 넘는 사자를 공격하는 경우도 있다. 어렵사리 포획한 영양을 사자가 뺏으려고 할 때다. 아무리 수가 많다고 해도 30㎏ 정도에 불과한 리카온이 사자를 당해낼 수는 없다. 하지만 리카온 떼는 결코 주눅이 드는 법이 없다. 사냥이 불가능할 정도의 큰 상처를 입어도 끝까지 돌봐주는 동료들이 있기 때문이다.

리카온 떼의 조직력은 거친 생존본능이 지배하는 사바나 초원에서 이례적일 정도로 탄탄하다. 하이에나보다 훨씬 작은 몸집을 갖고도 당당한 포식자의 일원으로 살아남은 비결이다.

팀워크는 팀의 가치를 높인다. 성공 횟수가 많아질수록 특히 그렇다. 조직의 가장 강력한 무기인 자신감이 배양된다. 좋은 팀워크는 어느 조직에나 있게 마련인 좀비(Zombie)들을 척결하는 데도 유리하다. 좀비는 말 그대로 조직 내에서 거의 죽어있는 사람들로,새로운 아이디어에 전혀 관심이 없다. 이들의 특징은 보통 때 가만히 있다가 술집같은 곳에서 불평을 늘어놓는다. 게릴라처럼 수시로 조직 내 변화 주도자와 아이디어 입안자들을 공격한다.


▶▶ 협력의 인자가 없는 조직은 죽은 조직이다

그래서 닛산에 혹독한 구조조정을 단행했던 카를로스 곤 회장은 "회사 인근에 술집이 번성하는 조직은 망한다"고 갈파했다. 그는 "변화가 제대로 이뤄지면 새로운 가치가 생겨나지만 잘못된 방향으로 흐르면 술집만 좋은 일 시켜준다"고 말했다. 좋은 조직이 좀비들을 내치는 비결은 의외로 간단하다. 상호 협력을 위해서는 업무나 프로젝트에 대한 이해와 공감대,그것을 이루기 위한 학습 분위기가 선행된다. 좀비들이 공부를 할 리가 없다. 겉으로 공부하는 척 해도 모두가 학습하는 곳에서는 금세 정체가 드러난다. 집단 항명을 하는 무리도 더러 있겠지만 대개 부서 변경을 신청하거나 그 전에 도태되는 코스로 간다.

그리하여 아무리 좋은 편제를 갖고 있다 하더라도 협력의 인자가 없는 조직은 죽은 조직이 될 수밖에 없다. 편제 자체가 협력을 위한 배려와 열정을 가져다 주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좋은 편제는 베낄 수 있다. 충분히 모방할 수 있다. 하지만 그것으로 좋은 조직을 만들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완전히 차원이 다른 얘기다. 협력의 비밀은 바로 여기에 있다. 목숨을 각오하고 덤벼드는 용맹함과 부상당한 동료의 먹거리를 챙겨주는 팀워크가 없다면 리카온의 편제는 그저 오합지졸의 들개떼로 전락할 뿐이다.

<특별 취재팀>

조일훈 산업부 차장
이정호 산업부 기자
이해성 사회부 기자
박신영 문화부 기자

<도움말 주신 분>

이홍교수 광운대 경영대학장
키스 소여 교수 워싱턴대 심리학과 <그룹 지니어스>저자
신원동 원장 한국인재전략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