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자도산 방지 카드 꺼냈는데…

정부가 1일 발표한 중소기업 유동성 지원 방안의 핵심은 은행들이 회생 가능 기업을 선별,지원하도록 해서 은행과 기업 모두에 윈-윈(win-win) 게임이 될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과거에는 정부가 보증을 확대하고 은행들에 대출을 늘리라고 독촉하기만 했지만 이번에는 은행에 인센티브를 제공해 자발적으로 나서도록 지원하는 것이다.

하지만 기본 구조가 과거 정부의 중소기업 지원책과 마찬가지로 대출과 보증을 늘리는 것이어서 사업이 '시혜적'으로 진행되면 은행들에 추가 부실을 유발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특히 과잉 설비나 과잉 공급을 초래한 중소형 조선업체나 중견 건설사까지 지원 대상으로 삼고 있는 만큼 대상 기업에 대한 선별과정이 투명하고 효율적이어야 한다는 지적이다.


◆금감원ㆍ은행,지원 대상 기업 선별

이번 정부 대책은 기업을 4등급으로 나눴다. 집중 지원 대상은 부실 징후 기업이 아니지만 경기 위축으로 자금 부족을 겪고 있는 A,B등급 기업이다. 이들 A,B등급에 대해서는 '중소기업 지원 패스트 트랙(fast track)'이 내년 6월까지 한시적으로 적용된다.

'중기 지원 패스트 트랙'은 금감원과 주채권은행이 보증기관과 작업반을 구성해 가이드라인을 만들고 지원 대상 기업을 선별해 신규 자금을 지원하는 방식이다. 금감원은 이날 은행연합회,채권은행 상설협의회,국민 신한 우리 하나 기업 농협 등 주요 은행,신보 기보와 함께 작업반을 구성해 운영에 들어갔다.

이 작업반이 앞으로 상시평가 대상 기업의 범위,상시평가 결과에 따른 유동성 지원 대상 기업의 선정 방법,유동성 지원 프로그램의 설계 등에 관한 기준을 마련한다.

정부는 은행 평가 시 중소기업 지원실적 반영,성과 공유 상품 프로그램 마련,담당 은행 임직원 면책,신보 기보 특별보증 등의 당근을 제공한다. 부실 징후가 있지만 회생 가능한 C등급 기업들은 종래의 워크아웃 절차에 따라 지원을 받게 된다.

◆"기업 선별 투명성,효율성이 관건"

이번 대책은 은행들의 자율성을 반영했다고는 하나 기본 구조는 중소기업에 대한 대출과 보증을 늘리는 것이다. 국책은행의 중소기업지원자금 3조3000억원 추가,한은 총액한도대출 확대,신보 기보의 보증 공급 확대 등은 중소기업 지원 방안의 단골 메뉴다.

또 신보가 건설사에 대해 공사계약 체결부터 공사대금 결제 기간까지 유동성을 지원하는 '브리지론 보증'이나 영세자영업자 특례보증 확대,중소기업 회사채 발행을 지원하기 위한 프라이머리 채권담보부증권(CBO) 발행 등도 마찬가지다.

이 같은 은행 대출과 보증의 확대는 필연적으로 '시혜적' 대책이 될 수 있다는 우려를 낳는다. 과거 회사채 신속지원이나 프라이머리 CBO의 대규모 발행으로 인한 신보 기보의 부실화가 대표적 사례다.

또 중소형 조선사나 지방 건설업체,키코 손실 기업에 대해서는 과잉 설비투자,주택 과잉 공급,과도한 환헤지 상품 가입 등 문제가 있기 때문에 지원 대상 선별 과정에서 도덕적 해이를 방지할 수 있어야 한다는 지적이다.

전효찬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은 "경기 악화에 따른 유동성 경색이라는 비상 상황에서 나온 한시적 조치인 것 같다"며 "하지만 걱정되는 것은 지원 대상 기업 선별 과정에서 얼마만큼 투명성과 효율성을 담보할 수 있느냐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재형/김현석 기자 jj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