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일(현지시간) 국제유가가 급락, 10월 인도분 서부 텍사스산 원유(WTI) 가격이 배럴당 100달러선에 근접함에 따라 앞으로 유가가 100달러선 밑으로 떨어질 것인지 시장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이날 뉴욕상업거래소(NYMEX)에서 10월 인도분 서부 텍사스산 원유(WTI)는 전날 종가보다 3.08달러(2.9%)나 떨어진 배럴당 103.26달러로 마감, 5개월여 만에 최저치를 기록하면서 100달러선 붕괴가 '초읽기'에 들어갔다.

이런 WTI 가격은 지난 7월 기록했던 최고치인 배럴당 147달러와 비교하면 약 30%나 떨어진 것이다.

브렌트유는 이미 배럴당 100달러 선이 무너졌다.

이날 영국 런던 ICE 선물시장의 10월 인도분 북해산 브렌트유는 전날보다 4.14달러(4%)나 급락한 배럴당 99.30달러로 거래되면서 지난 4월2일 이후 5개월여 만에 처음으로 100달러 이하로 떨어졌다.

이날 유가의 하락세는 허리케인 아이크가 멕시코만 석유생산시설에 별다른 영향을 주지 않을 것으로 알려진 데다 석유수출국기구(OPEC)가 원유를 감산하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제기된데 따른 것이다.

허리케인은 유가에 단기적인 영향을 미치는 재료이지만 OPEC의 생산량 조절은 당분간 유가에 중요한 영향을 미칠 변수임에 틀림없다.

이란 등 OPEC내 강경파들은 최근 유가가 지속적으로 하락하자 감산을 통해 가격을 올리던지 아니면 최소한 추가 하락은 막아야 한다는 입장을 개진해왔다.

하지만 사우디아라비아를 비롯한 여타 회원국들은 가뜩이나 전세계 경제가 인플레이션과 경기둔화로 신음하고 있는 민감한 시기에 OPEC가 생산량을 줄일 경우 자기들만의 이익을 위해 각국의 고통을 가중시킨다는 비난을 받게 될 것을 부담스러워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내셔널퓨처스닷컴의 존 퍼슨 사장은 "현 시점에서 생산량을 줄이는 것은 OPEC로서는 경제적인 자살행위나 다름없다"고 말했다.

유가 급등이 전세계 경제의 성장 둔화를 부추기고 있는 상황에서 유가가 배럴당 100달러 이상을 지속적으로 유지하면 향후 석유수요가 더욱 줄면서 시장 점유의 기반 자체를 잃게 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시장에서는 OPEC의 생산량 유지가 확정되면 유가 하락세를 더욱 부추기면서 WTI 100달러선이 무너질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보고 있다.

더구나 최근에는 달러화 강세가 지속되고 있는데다 경기 침체로 인한 석유수요 감소라는 전반적인 기조가 시장의 근저에 깔려 있기 때문에 이같은 전망에 더욱 힘이 실리고 있다.

최근 뉴욕상업거래소(MYMEX)를 비롯한 주요 시장의 움직임을 보면 '경기 부진'이라는 재료가 워낙 시장을 강하게 짓누르고 있어 허리케인이나 러-그루지야 분쟁 등의 상승 요인이 맥을 추지 못하는 장세가 전개되고 있기 때문이다.

미 에너지정보청(EIA)의 자료에 따르면 올해 미국의 석유 소비량은 1일 61만배럴로 작년보다 3% 가량 감소할 것으로 전망됐다.

시장 일각에서는 WTI 100달러선이 심리적 지지선으로 간주되고 있기 때문에 당분간 이 가격대가 깨지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하지만 올 들어 유가를 150달러선에 육박하는 수준으로 끌어올렸던 공급 부족이나 투기세력 개입 등의 요인이 이미 시장에서 세력을 잃은 상태여서 유가의 전반적인 하향 안정기조는 지속될 것이라는 전망이 갈수록 설득력을 더해가고 있다.

앨터베스트 월드와이드 트레이딩의 애널리스트 토머스 하트먼은 "현 시점에서 시장의 주도권은 공급이 아니라 수요 쪽에 있다"고 말했다.

(뉴욕연합뉴스) 김지훈 특파원 hoonkim@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