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산화탄소(CO₂) 등 온실가스 감축은 기업 입장에서 보면 부담이다. 늘 그렇 듯이 '위기'는 새로운 '기회'와 함께 찾아 온다. 기업들이 한숨을 쉬는 사이 다른 한편에선 기후변화와 관련된 '그린 비즈니스'들이 생겨나고 있다.

선진국들은 그린 비즈니스를 선점하기 위한 전략을 세우고 치열한 경쟁을 벌이는 중이다. '저탄소의 경제학'을 적극 활용하고 있는 셈이다.

일본은 '저탄소 사회'를 신성장 동력으로 활용하기 위해 2050년까지 중장기 기술개발 로드맵을 설정,범 국가적 차원에서 드라이브를 걸고 있다. 한국도 정부와 기업 차원에서 '저탄소 비즈니스' 사업역량을 강화해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조언한다.

◆새롭게 등장하는 저탄소 비즈니스

유럽의 백색 가전업체인 보쉬―지멘스는 지난 7월 이색적인 사업계획을 발표했다. 브라질 전력회사와 제휴,전력 고효율 냉장고를 브라질 빈민들에게 무료로 나눠주는 비즈니스를 시작하겠다는 것이다.

이 사업은 상식적으로는 비즈니스가 될 수 없지만 실상은 돈벌이가 된다. 수익을 챙기는 메커니즘이 따로 숨어 있다. 비밀은 바로 청정개발체제(CDM)다.

2005년 교토의정서 발효를 계기로 온실가스 감축이 의무화되면서 탄소배출권 거래제가 도입됐다. 온실가스 의무 감축국 가운데 할당된 허용치를 초과한 국가나 기업들이 그렇지 않은 국가나 기업으로부터 배출권을 매입함으로써 허용치를 맞추도록 하기 위한 제도다.

유럽연합(EU)은 2005년부터 EU 탄소배출 거래시장(EU-ETS)을 만들어 운영 중이다. 교토의정서를 비준한 39개국과 해당국 기업은 직접 줄인 온실가스는 물론 개발도상국에서 CDM 프로젝트를 통해 온실가스를 줄인 경우 배출감축권(CER)을 인정받아 감축 실적에 반영할수 있다.

결국 보쉬―지멘스의 프로젝트는 '최신 냉장고 제공→전력 저효율 냉장고 수거→전력감축분을 탄소배출권으로 확보→탄소배출권 매각→이익 창출'이라는 그린 비즈니스를 겨냥한 셈이다.

수거된 냉장고에서 채취한 냉매제 수소불화탄소(HFCs)도 CDM 실적으로 인정받아 돈으로 만들 수 있다. 전문가들은 보쉬―지멘스처럼 저탄소를 이용한 새로운 비즈니스는 온실가스 감축 규제가 강화될수록 더욱 늘어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급성장하는 탄소배출권 시장

세계은행에 따르면 지난해 탄소배출권 거래량은 640억달러(약 73조원)로 2006년(312억달러)에 비해 두 배 이상 증가했다. 2010년께는 1500억달러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다양한 비즈니스가 생겨날 수 있다는 얘기다. EU와 일본 기업들은 중국 등에서 CDM 프로젝트를 활발하게 벌이고 있다.

일본 최대 철강회사인 신일본제철(NSC)은 전체 온실가스 감축목표의 5~10%를 CDM 프로젝트로 해결하고 있다. 일본 기업들은 해외 공장의 CO₂배출 감축을 통해 '탄소배출권'을 얻으려고 설비 업그레이드도 추진 중이다.

한국은 교토의정서상 의무감축국이 아니어서 국내 기업들은 CDM에서 얻은 배출감축권(CER)을 선진국에 판매하는 형태로 참여하고 있다. 화학업체 퍼스텍은 울산공장의 온실가스감축 프로젝트를 통해 366만t의 감축권을 인정받아 일본과 영국 등의 기업에 매각했다.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현재 국내외 기업에 의해 국내에서 추진되고 있는 CDM사업은 50건(유엔 등록사업은 19건)이며 국내기업이 해외에서 추진하는 사업은 10여건이다. 2013년 온실가스 의무감축국 지정에 대비,국내에도 탄소시장 기반을 서둘러 갖춰야 한다는 지적이 높다.

◆정보기술(IT) 강점 살려 기술력 높여야

저탄소 사회를 실현하면서 '돈'을 벌 수 있는 핵심은 기술이다. 일본 기업들이 CDM 프로젝트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것은 기술력이 뒷받침되기 때문이다. 일본 정부는 그린기술 개발에도 대규모로 투자하고 있다.

일본 경제산업성은 지난 5월 '쿨 어스(Cool Earth) 에너지 혁신기술 계획'을 통해 발전ㆍ송전,교통,산업,민생 분야에서 21개 핵심기술을 선정,기술개발 로드맵을 제시했다.

태양광발전 등 신재생 에너지뿐 아니라 석탄가스화 복합발전(IGCC),CO₂포집ㆍ저장기술(CCS) 등 화학연료 청정화 기술개발,하이브리드카 및 전기자동차 개발이 포함돼 있다.

신재생에너지 등 온실가스 감축과 관련된 한국의 기술력은 선진국 대비 분야별로 50~70% 수준에 머물고 있다. 안남성 충남대 교수는 "기술격차를 이른 시간 내에 극복하려면 상대적으로 강점을 갖고 있는 IT를 적극 활용해야 한다"며 "그린홈,그린빌딩,그린카 등 IT 기반의 신기술들을 개발하는 데 국가 역량을 모아야 할 시점"이라고 조언했다.

박성완 기자 ps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