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대의료원에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그동안 서울대 연세대에 비해 크게 밀렸던 병원·의학 분야가 최근 3년간 진행된 강도 높은 개혁 드라이브를 통해 괄목하게 발전한 것. 안암·구로·안산 등 3개 산하 병원에 대규모 자본을 투입,시설 장비 인력 확충을 감행한 데다 고객에게 친절하고 신속한 서비스를 제공한 결과다. 부정맥치료 심장중재술 로봇수술 소화기질환 수면의학 등 경쟁 대학을 앞질러가는 특화 분야도 하나둘씩 늘고 있다. 이런 추세라면 국내 최고 의료기관으로 평가받을 날도 멀지 않았다는 전망이다. 이 같은 긍정적 변화를 이끌고 있는 오동주 고려대의료원장 겸 고려대 의무부총장을 최근 만나 그동안의 성과와 향후 발전전략,의료 전반에 대한 생각을 들어봤다.

―요즘 고려대의료원을 이용하는 환자들의 만족도가 높다는 평판이다.

"우리 의료원은 2000년대 초반 다른 대학병원이 시설 확충과 인재 확보에 나서는 사이 동면기에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리 스스로 제공하는 의료 서비스에 자신감이 없었다. 의료 소비자는 물론 고려대 동문들로부터도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다. 그래서 3년 전 비전을 선포하고 '우리도 하면 된다' '절대 포기하지 않는다'는 열정으로 의료원 개혁에 나섰다. 내부 저항이 컸으나 고객 감동을 위한 직원교육부터 강화했다. 콜센터를 설치하고 환자들이 기다리는 시간을 단축하고 휴식 공간을 확충하는 등 진료 불편사항을 개선해 나갔다. 그 결과 고객들이 체감할 정도로 서비스가 향상됐다. 최근 환자 수가 늘어 올 8월 말 현재 의료원 총 매출액은 전년 동기 대비 20%나 늘었다. "

―매출 신장의 보다 구체적인 요인은.

"안암병원은 2005년 시작한 전면적인 리모델링을 통해 서울 동북부의 가장 경쟁력 있는 병원으로 거듭났다. 891개 병상의 가동률이 95%로 항시 300여명의 입원 대기환자가 있어 400병상 규모의 '첨단의학센터' 신축을 추진하고 있다. 구로병원은 지난 6월 신관을 완공하고 1050병상 규모로 재탄생해 서울 서남부의 거점 병원으로 입지가 확고해졌다. 지역민은 물론이고 지방에서 서해안고속도로나 KTX(광명역 이용)를 타고 찾아오는 환자가 급증하고 있다. 중증 응급환자를 잘 치료한다는 소문이 나서다. 이 병원의 환자 중증도는 신촌 세브란스병원보다 높다. 여기에 신관을 신축하면서 병원이 쾌적해지고 영상유도암치료기 등 500억원대의 최신 의료장비를 들여와 환자의 신뢰도가 더 높아졌다. 안산병원은 안산시 유일의 대학병원이다. 그동안 투자가 미흡했으나 시설 장비 인력을 과감히 확충한 결과 올해 처음 적자에서 흑자로 전환했고 교수들의 사기도 올랐다. "

―첨단의학센터 신축 방안은.

"한 대형 투자회사와 양해각서(MOU)를 맺었고 외부 자금 3000억원 정도를 수혈받아 BTO(건설-양도-운영) 또는 BTL(건설-양도-임대) 방식으로 추진할 것이다. 세부계획을 수립했고 환경·교통영향평가 등을 거쳐 내년 중반께 착공이 가능할 것으로 본다. 빠르면 2011년 말에 준공된다. 널찍한 외래진료 시설과 특화 진료센터,첨단 연구소 등을 갖출 계획이다. 지하철역으로 이어지는 신축 건물 저층부에는 쇼핑과 문화생활이 가능한 멀티플렉스를 조성해 이 일대를 신촌 대학로에 버금가는 랜드마크로 키우겠다. "

―고려대의료원이 최근 역동적으로 움직이자 인근 경쟁 병원에서 잔뜩 긴장하고 있다. 향후 5년 내에 이른바 '빅5' 병원(서울대병원 연세의료원 서울아산병원 삼성서울병원 가톨릭의료원 등) 반열에 오르겠다고 선언한 적도 있다.

"외부에서 고려대의료원을 주목하고 있다. 의료원장 회의에 가면 다들 '놀랍다'고 반응하며 우리의 동향에 대해 물어온다. 진작에 맘만 먹었으면 충분히 해낼 수 있었는데 그동안 자신감이 부족했다고 반성한다. 일면 우리가 저평가받은 측면도 있다. 예컨대 난치성 부정맥 치료 등 몇몇 분야에선 이미 우리가 국내 톱이다. 재작년에 이어 지난해에도 연세대의료원보다 많은 SCI(과학기술논문색인)급 논문을 냈다. 의료는 결국 사람이 하는 것이기 때문에 인재 확보에 주력한다면 5년 안에 질적 차원에서 빅5 병원에 진입할 수 있을 것이다. "

―어떻게 인재 확보에 나서고 있나.

"지난해에 김선한(대장·직장암 로봇수술),박철(귀 성형술),변재진(전 보건복지부 장관·병원경영 자문),필립 박(심장병·해외 교류 자문)씨 등을 교수로 영입했다. 지금도 두 명의 실력파 해외 한인 의사를 특별 대우하는 조건으로 초빙하려고 섭외 중이다. 오는 11월에는 미국에 가 직접 찾아보려고 한다. 의대생을 위해 다음 달 이사회의 결정이 나는 대로 연면적 1만9800㎡ 규모의 의학관을 신축할 것이다. "

―강남에 분원을 낸다고 들었다.

"기부받은 서울 청담동 땅 중 절반인 660㎡에는 조만간 7층 건물을 착공해 분원을 낼 예정이다. 나머지 땅은 추가로 대지를 확보해 17층 빌딩을 신축하려 한다. 두 건물엔 의료원을 대표하는 전문치료센터가 들어서며 일부는 특수대학원이나 최고위과정을 운영해 고려대 강남 분교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

―의료산업의 국제 경쟁력 확보와 외국 의료관광객 유치가 의료계의 화두인데.

"미국 피츠버그대 병원과 협력해 국내에 분원을 유치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현재 의료진 교환,시설 투자,지분 배분 등을 논의 중이고 몇 달 안에 두 병원 관계자가 실무 접촉할 예정이다. 하버드 의대 교수 출신인 필립 박이 직접 뛰고 있어 미국 측의 신뢰가 두텁고 성사 가능성이 높다. 미국 동부의 대형 병원을 둘러보니 우리의 의료장비 수준이 3단계쯤 높았다. 해외 동포를 상대로 이를 홍보하면 많은 환자가 찾아올 것이다. 의료원내 신성장동력산업 태스크포스가 뉴욕 로스앤젤레스의 언론과 접촉해 이를 추진 중이다. "

―그동안의 개혁으로 직원들의 노동 강도가 높아졌다.

"직장이 잘 되려면 뚜렷한 비전과 조직원 간의 신뢰와 사랑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 모든 직원들에게 생일 축하 문자 서비스를 보내주고 있다. 반응이 좋아 답장도 많이 받는다. 내가 먼저 직원에게 인사하고 열심히 일하는 간호사 옆구리도 쿡 찔러가며 아는 체한다. 밸런타인데이나 화이트데이를 챙기고 호프데이 행사도 가져 직원들과 마음을 트고 있다. 음지에서 고생하는 조리원 미화원 안전요원 이송요원 등과도 자주 회식자리를 만들어 애로사항을 청취하고 해결해준다. 직원들이 의료원장과 거리감을 갖지 않게 섬기는 리더십을 실천하려 노력하고 있다. 이런 노력이 좋은 경영 성과로 이어지고 있다. 특히 직원들이 보수적인 자세를 버리고 진실한 마음으로 환자에게 먼저 다가가고 있음에 보람을 느낀다. "

―다시 태어나도 의사가 되고 싶다고 했는데.

"지금은 병원 행정을 하고 있으나 원래 심장내과 의사로서 생사의 경계에 선 사람을 구하는 걸 큰 행복으로 여기고 살아왔다. 찾아오는 환자 수가 원내에서 제일 많았다. 치료 후 전화로 문제가 없는지 상의해주고 내가 모르는 분야의 질환도 환자가 최적의 진료를 받을 수 있도록 안내해준 덕분일 것이다. 진료실에는 항시 30만원을 들고 간다. 돈이 없어 검사를 받지 못하고 돌아가는 시골 노인 환자에게 꿔주기 위해서다. 차용증을 받지 않아도 아직 떼인 적은 없다. "

―심장내과 전문의로서 심장 건강에 대해 조언한다면.

"선배 의사 중에 심장병으로 돌연사한 사람이 몇 있다. 막힌 관상동맥을 애써 뚫어놔도 거듭 막히기도 한다. 그래서 영양학을 공부해 음식조절을 통한 예방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게 됐고 신문에 관련 칼럼도 많이 썼다. 심장병이 생기는 것은 고혈압,나쁜 콜레스테롤과 지방,당뇨병,흡연,비만,스트레스 등 '6적'을 다스리지 않기 때문이다. 혈관은 원래 실크처럼 깨끗하다. 위험 요인이 있는 줄 알면서도 관리하지 않으면 혈관에 흠집이 생기고 그 사이에 노폐물이 끼고 딱딱하게 굳고 막혀서 파열한다. 과식하고 운동하지 않는 게으른 습관을 고쳐야 한다. "

글=정종호/사진=양윤모 기자 rumb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