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강값 하락 전주곡인가
수입 고철ㆍ핫코일ㆍ철근 약세 뚜렷
中 경제 슬럼프로 수요 감소 예상
국내업체는 아직 인하조짐 안보여

작년 1분기 이후 1년반 동안 줄곧 오르기만 하던 철강제품 가격이 소폭의 하향 안정세로 돌아섰다. 반기나 연간 단위의 장기계약 물량에는 아직 변화가 없지만 매일 가격이 변하는 현물(스폿)시장의 수입 철강제품 가격은 최근 한 달 사이에 10∼15%가량 떨어진 것으로 파악된다. 고철과 핫코일뿐만 아니라 철근 가격도 완연한 내림세를 보이고 있다.

전문가들은 당분간 이 같은 추세가 이어질 것으로 보고 있다. 여름철 비수기가 지나더라도 베이징 올림픽 이후 중국 경제의 위축이 현실화될 경우 수요 기반이 약화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중국발 경기 침체가 세계 시장 전반에 부정적인 영향을 몰고와 철강제품 가격이 큰 폭의 조정을 받을 수도 있다는 관측을 내놓고 있다.

◆계속 오를 것만 같더니…

가격 하락세는 해외 수입품이 주도하고 있다. 철강협회 등에 따르면 전기로(電氣爐) 업체들의 철강제품 원가를 결정하는 고철 수입 가격은 지난 달 초 t당 735달러에서 이달 8일에는 t당 650달러로 40여일 만에 11.6% 하락했다. t당 300달러를 밑돌았던 지난해 초와 비교하면 여전히 높은 수준이지만 지난 1년6개월 동안 가격이 떨어진 것은 요즘이 처음이다.

한 달 전까지만 해도 t당 1100달러에 육박하던 중국산 핫코일(열연강판) 값도 지난 주말에 t당 970달러대로 내려앉았다. 국내 중소 조선업체들의 목줄을 누르던 중국산 후판(厚板) 가격도 같은 기간 t당 1200달러 선에서 1000달러대로 떨어졌다. 김경중 삼성증권 연구위원은 "세계 철강 가격이 중간 재료인 고철,빌릿,슬래브 등에서부터 기본 철강재인 핫코일과 철근에 이르기까지 모두 약세를 보이고 있다"며 "이런 흐름은 최소한 이달 말까지 이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철강회사 설비증설 경쟁도 한 몫

철강제품 가격을 끌어내린 가장 큰 원인은 향후 중국 경제에 대한 우려다. 베이징 올림픽 이후 중국 경제가 슬럼프에 빠질지도 모른다는 걱정이 커진 것.전 세계 주요 원자재를 블랙 홀처럼 빨아들이던 중국의 성장세가 꺾이면 철강제품 수요도 줄어들 수밖에 없다.

이미 경기 침체 그림자가 드리운 미국 유럽 등의 철강 수급도 예전처럼 빡빡하지 않다. 전 세계 주요 철강회사들이 앞다퉈 설비 증설에 나서고 있는 것도 추가 하락을 점치게 하는 요인이다.

◆국내 철강값 인하로 이어지나

수입품을 중심으로 철강재 가격이 하락하고 있지만 포스코 현대제철 동국제강 등 국내 업체들이 당장 가격 인하 조치를 단행할 가능성은 낮은 것으로 보인다. 오히려 올 4분기 중 한 차례 더 철강가격이 인상될 수 있다는 관측이 우세하다. 철강업체 관계자는 "열연강판 등 기본 철강제품의 가격을 내리려면 철광석 유연탄 등 원자재 가격부터 하락해야 하는데 아직 그런 조짐은 보이지 않는다"며 "현재 철강가격에는 원재료 인상분이 100% 반영되지 않은 만큼 추가 인상 여지가 있다"고 설명했다.

그렇다 하더라도 자동차 조선 전자 등 국내 주력 업종의 채산성에 엄청난 부담을 안겨온 철강제품 가격이 과거와 같은 폭등세는 더 이상 이어가기 어려울 것이라는 관측이 힘을 얻고 있는 분위기다.

안재석 기자 yag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