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면 처음이자 마지막 기회였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스나이퍼' 설기현(29.풀럼)은 주어진 기회를 멋지게 살려내며 사령탑의 믿음에 골로 화답했다.

설기현은 16일(한국시간) 밤 치러진 2008-2009시즌 잉글랜드 프로축구 프리미어리그 개막전에서 헐시티를 상대로 전반 8분 헤딩 선제골로 이번 시즌 첫 골의 짜릿함을 맛봤다.

이날 설기현의 득점은 레딩 소속으로 뛰던 지난해 5월 14일 블랙번전 득점 이후 무려 1년 3개월 여만에 터진 정규리그 골이자 지난 시즌 초반 풀럼 유니폼을 입은 이후 처음 맛본 '늦깎이 데뷔골'이기도 했다.

그러나 풀럼은 전반 23분 동점골을 내준 뒤 경기 종료 8분을 남기고 수비 실수로 역전골을 허용, 1-2 역전패를 당하면서 설기현의 선제골을 끝까지 지키지 못해 아쉬움을 남겼다.

비록 승리를 눈앞에서 놓쳤지만 설기현의 시즌 1호 골은 풀럼 이적 이후 측면 공격수로 뛰다가 전방 스트라이커로 보직을 바꾼 첫 경기에서 터져 나왔다는데 큰 의미가 있다.

설기현은 지난해 연말 로리 산체스 감독의 뒤를 이어 풀럼 지휘봉을 잡은 로이 호지슨 감독의 신임을 얻지 못하면서 줄곧 벤치를 지켜야만 했고, 한 때 방출설이 나돌 정도로 팀내 입지를 굳히지 못했다.

무득점으로 시즌을 마친 설기현은 설상가상으로 2010년 남아프리카공화국 월드컵 아시아지역 3차 예선에 나선 허정무호에서도 별다른 활약을 펼치지 못하며 기나긴 슬럼프의 터널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듯 했다.

설기현에게 기회가 찾아온 것은 이번 시즌 개막을 앞두고 치러진 프리시즌 매치였다.

호지슨 감독은 지난 10일 FC토리노(이탈리아)와 치른 평가전에서 설기현을 보비 자모라와 함께 투톱 스트라이커로 내보냈고, 설기현은 2도움을 올리는 활약을 펼쳤다.

토리노전 이후 호지슨 감독은 "설기현이 가장 좋은 활약을 보여주는 포지션에서 뛰게 할 것이다.

측면 공격수보다는 스트라이커가 더 적당한 포지션인 것 같다"고 보직 변경을 예고했고, 결국 헐시티와 치른 이번 시즌 개막전에서 자모라와 투톱을 맡기는 모험을 단행했다.

무거운 책임감 속에 그라운드에 나선 설기현은 전반 시작과 함께 왼쪽 측면 크로스로 득점 기회를 만들더니 전반 8분 오른쪽 측면에서 날아온 크로스를 페널티지역 정면에서 헤딩슛으로 왼쪽 골대 구석에 꽂았다.

감독의 판단이 옳았다는 것을 스스로 증명해낸 것.
설기현은 전반 34분에도 선제골과 똑같은 상황에서 헤딩슛을 날렸지만 아쉽게 골키퍼 손끝에 걸리며 추가골 사냥에 실패했다.

그러나 설기현은 후반 40분 교체될 때까지 중앙과 측면을 부지런히 오가고 수비 가담에도 적극적으로 나서면서 호지슨 감독의 확실한 눈도장을 받아내는데 성공했다.

(서울연합뉴스) 이영호 기자 horn90@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