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들의 미술품 전시공간이 '아트 사랑방'으로 진화하고 있다. 감성 마케팅 시대에 맞게 미술관 형태의 소장품 전시에서 벗어나 기업의 이미지를 높이고 직원들의 감성을 자극하면서 회사 수익도 올리는 공격적인 방식으로 바뀌는 추세다. 전시 공간도 백화점,호텔,사옥 로비,매장,공장까지 파고들고 있다. 미술품이 상품의 광고와 디자인,디스플레이 등의 콘텐츠로 활용됨에 따라 총체적인 아트디렉팅이 필요한 데다 마케팅 방법도 상품에 문화의 옷을 입히는 형태로 바뀌면서 일어난 현상이다. 이처럼 전시장이 기업의 '아트 사랑방'으로 탈바꿈한 사례는 지난 3월 문을 연 현대·기아자동차의 '양재아트리움'을 비롯해 안국약품의 '갤러리AG',이브자리의 '이브갤러리',에르메스코리아의 '아틀리에 에르메스',샘표식품의 '샘표 스페이스',KTF의 '디 오렌지',금호건설의 '크링',애경그룹의 '몽인아트센터',KT&G의 '상상마당',동일방직의 '동일갤러리' 등 30여곳에 달한다. 고객의 수요 충족과 미술품 판매,미술투자 세미나,컨설팅 서비스 등을 동시에 제공하고 전시회까지 잇달아 열고 있다.


안국약품은 지난 1일 서울 대림동 사옥 1층 로비에 상시 전시공간인 '갤러리AG'를 개관했다. 임직원들에게는 문화시대에 맞는 감성과 창의성을 배양하게 하고 방문객이나 지역 주민들에게는 '문화 사랑방'으로 활용토록 하자는 취지다. 개관전에는 '생명의 빛'을 주제로 한 한국화가 30여명의 작품 40여점이 걸렸다.

현대ㆍ기아자동차 그룹은 중후장대한 기업 이미지에 부드러운 분위기를 접목하기 위해 지난 3월 서울 양재동 사옥 1층 로비에 갤러리 형식의 '양재 아트리움'을 마련했다. 자동차 디자인부터 신제품 론칭,디스플레이,판매,기업컬렉션에 이르기까지 총체적인 아트디렉팅 공간으로 활용하겠다는 것.최근에는 김오안 이정진 김중만씨 등 중견 사진작가 3명이 참여한 '포토그라피 아트&도큐멘트'전을 열고 16점을 전시하고 있다.

럭셔리 브랜드 에르메스코리아도 지난해 서울 강남 도산공원 옆에 '메종 에르메스 도산파크'를 오픈하면서 전시공간 '아뜰리에 에르메스'도 함께 문을 열었다. 고객들에게 품격 있고 차별화된 고급 패션문화를 알리면서 편안한 문화 휴식 공간을 제공하기 위해서다. 2~3개월 단위로 진행되는 기획전이 진행되며,17일까지 박찬경씨의 개인전이 이어진다.

금호건설 역시 지난 6월 서울 대치동 사옥에 600㎡ 규모의 아트사랑방 '크링'을 열었다. 주택 건설 사업과 연관성이 있는 영상·인쇄물을 지속적으로 노출시키면서 고객의 관심을 끌어 모으기 위해서다. 오는 30일까지 계속되는 개관전에는 젊은 작가 노동식 유영운 이환권 장성훈의 조형물을 비롯해 채미현과 닥터정의 레이저 아트 작품 '몽유산수도''월광지곡',권지은의 인터랙티브 작품을 배치했다.

매장이나 공장 안에 전시 공간을 운영하는 경우도 있다. KTF의 명동 중앙로점에 설치된 120㎡ 규모의 전시장 '디 오렌지'는 휴대폰 구입 고객들에게 미술품 감상과 휴식공간으로 활용된다. 오는 20일부터 9월6일까지 펼쳐지는 '명동속의 작은 그림가게'전에서는 20~30대 작가 정필승씨와 노현탁 조장은 김선미씨 등이 출품한 작품 16점을 점당 20만원에 판매한다.

샘표식품은 이천 공장에 720㎡ 규모의 전시장을 열어 근로자들의 감성지수를 높이고 생산 의욕을 북돋워주고 있다. 이 밖에 태광그룹,LIG손해보험,세종호텔도 사옥 1층을 갤러리로 만들었고,신세계백화점 본관의 아트월갤러리 및 신세계갤러리,롯대백화점 명품관 애비뉴엘의 롯데갤러리,서울 용산구 아이파크백화점 7층의 갤러리 아사림 등도 예술공간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이일영 갤러리 한국미술센터 대표는 "21세기는 창조적 열정이 이끌어가는 시대인 만큼 세계 일류기업일수록 아트 마케팅에 관심을 쏟고 있다"며 "최근 들어 임직원과 지역 주민,방문객들을 위한 기업들의 '아트 사랑방'도 이 같은 추세를 반영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경갑 기자 kkk10@hankyung.com
기업 '아트사랑방'이 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