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승모 대표는 매일 아침 출근해 출고 직전에 있는 골뱅이 통조림을 먹는 것으로 하루 일과를 시작한다. 대표이사가 된 뒤 해외 출장 등 부득이한 사정을 제외하고는 하루도 거르지 않고 이 일을 반복하고 있다. 골뱅이가 제 맛을 내는지를 직접 확인하기 위해서다. 강 대표는 "골뱅이 통조림은 살균을 위해 고열을 가하기 때문에 3개월 정도 숙성돼야 맛이 가장 좋다"며 "유동 골뱅이는 소비자가 가장 맛있게 먹을 수 있도록 유통 과정을 고려해 생산된 지 일주일 정도 지난 뒤 시장에 내놓는다"고 설명했다.
강 대표는 애초 고위 공무원이 꿈이었다. 서울대 경제학과 재학 중이던 1984년 행정고시 28회 재경직에 합격한 그는 조달청 사무관(원자재 정부비축사업 담당)으로 공직 사회에 첫발을 내디뎠다. 이후 경제기획원에서 금융실명제.토지공개념 입법 등의 업무를 맡았고 재정경제원에서는 경제개발 정책 및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 협상 실무를 담당했다.
또 재정경제부 금융협력과장으로 있으면서 동아시아 통화금융 협력,한.칠레 자유무역협정(FTA) 금융분야 협상에 참여하는 등 요직을 두루 거쳤다. 주 프랑스 한국대사관에 근무할 때 파리정치대학에서 경제학을 전공,2002년 경제학 박사 학위까지 받았다.
하지만 강 대표는 2003년 초 18년간의 공직 생활을 접어야 했다. 강 대표는 "어려서부터 부친이 하는 사업과는 담을 쌓고 살았기 때문에 경영자가 된다는 생각은 솜털만큼도 안 했다"며 "사실 부친이 쓰러진 뒤 가족 회의를 하고 나서 공직을 그만둔 2개월 남짓한 동안 마음 고생이 컸다"고 털어놨다.
강 대표에게 출근은 '충격' 그 자체였다. 대학에서 경제학을 전공하고 외국 경제학 박사 학위까지 받은 데다 경제 담당 공무원으로 근무했던 만큼 경제 분야에서는 남들에게 뒤지지 않을 정도로 실력이 있다고 생각해 왔다. 하지만 회사에 나와 보니 어려운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서류조차 제대로 볼 줄 몰라 쩔쩔맸다. 강 대표는 "수출입 신용장,어음 등을 난생 처음 봤고 대표가 연대 보증을 서야 하는 것도 그때 알았다"면서 "현실과 동떨어진 경제 관료였다는 것을 아는 순간 창피했다"며 겸연쩍어했다. 그는 "고객이 찾는 좋은 상품을 만들어 매출을 올리고 제때 월급을 줘야 한다는 걱정에 대표가 된 뒤 한동안 선잠을 잤다"고 회고했다.
또 강 대표에게는 직원들과의 소통도 '벽'이었다. 회의 때 벙어리가 된 듯 입을 꽉 다물고 있고 그저 시키는 일만 하는 직원들을 보면서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냉가슴을 앓았다. 강 대표는 "직원들에게 다가가기 위해 생산 직원,트럭 기사 등 직원들과 소주잔을 기울이며 속내를 털어놓는 대화를 통해 거리를 좁혔다"고 소개했다.
강 대표는 요즘 중국어 회화 공부에 여념이 없다. 중국 시장을 공략하기 위해서다. 강 대표는 "중국 시장을 유동골뱅이 황금 어장으로 만들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리겠지만 내 대에서 중국인의 입맛을 사로잡겠다"고 강조했다.
이계주 기자 leer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