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보 '보험 외길' 50년 "존경받는 100년 기업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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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성장으로 '존경받는 100년 기업'이 되겠습니다. " 교보생명이 7일 창립 50주년을 맞는다. 생명보험 한 길을 걸으며 50년간 독자 성장해 온 유일한 전문 금융회사인 교보생명의 신창재 회장(사진)은 올해를 '100년 기업으로 도약하는 원년'으로 삼고 미래를 준비하겠다고 밝혔다. 2015년까지 총자산 100조원,순이익 1조원을 이루겠다는 중기 성장 목표도 세웠다.
◆교보의 발자취는 한국 보험의 역사
"오늘의 개업식이 초라하다고 서글퍼하지 맙시다. 선진국에서도 보험사가 자리잡으려면 50년이 걸립니다. 저는 25년 안에 세계적인 회사를 만들고 서울의 제일 좋은 자리에 제일 좋은 사옥을 짓겠습니다. "
1958년 8월7일 서울 종로의 작은 사무실에서 열린 대한교육보험(교보생명의 옛이름) 개업식에서 고 신용호 회장(창립자)이 한 약속이다.
전 세계 최초로 '교육보험'을 내놓으며 보험시장에 뛰어든 대한교육보험은 높은 교육열을 발판으로 창업 9년 만인 1967년,업계 정상에 올랐다. 1980년 종로1가 1번지에 교보빌딩을 세웠고 1983년 세계보험협회(IIS)의 '세계보험대상'을 수상했다. 고 신 회장의 약속이 지켜진 것이다.
창립 첫 해 2200만원이던 총자산은 이제 50조원 돌파를 눈 앞에 두고 있다. 지난해 매출은 12조3000억원으로 단일 기업으로 국내 20위 규모다. 지금까지 고객에게 준 보험금만 115조원에 달하는 교보생명은 계약자 530만명,보유계약 1000만건이 넘는 '국민기업'이다.
1977년 국내 최초 '종업원퇴직적립보험' 출시,1980년 국내 최초 '암보험' 개발,1988년 업계 최초 계약자 이익배당 실시 등 교보생명의 역사는 한국 보험의 역사와 함께 했다.
◆외환위기를 전화위복 계기로
어려움을 모르고 성장해 온 교보생명은 1997년 외환위기로 한때 부도 위기에 내몰리기도 했다. 거래 대기업들이 줄줄이 도산하면서 2조원이 넘는 손실을 기록했다. 2000년엔 2540억원의 적자를 냈다.
서울대 의대 교수를 그만두고 1996년 최고경영자로 변신한 신창재 회장은 대대적인 경영 혁신에 나섰다. 외형 중심의 경쟁을 탈피하겠다고 선언했다. 잘못된 영업 관행을 뜯어고쳤고 설계사도 절반 이상 줄였다. 마케팅은 중장기 보장성보험 위주로 전환했다. 그 결과 1990년대 연간 400억~500억원에 머물던 순이익은 지난해 4335억원으로 늘어났다. 신용평가기관인 무디스(Moody's)는 교보생명의 신용등급을 국가신용등급과 같은 A2등급으로 최근 평가했다. 교보생명은 이제 100년 기업으로 도약하기 위한 새로운 준비를 하고 있다. 신 회장은 '좋은 성장론'이란 화두를 던졌다. 고객이 만족해야 매출과 이익이 늘고 고객 종업원 회사 주주가 모두 발전하는 선순환을 이루게 되며 이를 토대로 '존경받는 100년 기업'이 되겠다는 것이다.
김현석 기자 realist@hankyung.com
◆교보의 발자취는 한국 보험의 역사
"오늘의 개업식이 초라하다고 서글퍼하지 맙시다. 선진국에서도 보험사가 자리잡으려면 50년이 걸립니다. 저는 25년 안에 세계적인 회사를 만들고 서울의 제일 좋은 자리에 제일 좋은 사옥을 짓겠습니다. "
1958년 8월7일 서울 종로의 작은 사무실에서 열린 대한교육보험(교보생명의 옛이름) 개업식에서 고 신용호 회장(창립자)이 한 약속이다.
전 세계 최초로 '교육보험'을 내놓으며 보험시장에 뛰어든 대한교육보험은 높은 교육열을 발판으로 창업 9년 만인 1967년,업계 정상에 올랐다. 1980년 종로1가 1번지에 교보빌딩을 세웠고 1983년 세계보험협회(IIS)의 '세계보험대상'을 수상했다. 고 신 회장의 약속이 지켜진 것이다.
창립 첫 해 2200만원이던 총자산은 이제 50조원 돌파를 눈 앞에 두고 있다. 지난해 매출은 12조3000억원으로 단일 기업으로 국내 20위 규모다. 지금까지 고객에게 준 보험금만 115조원에 달하는 교보생명은 계약자 530만명,보유계약 1000만건이 넘는 '국민기업'이다.
1977년 국내 최초 '종업원퇴직적립보험' 출시,1980년 국내 최초 '암보험' 개발,1988년 업계 최초 계약자 이익배당 실시 등 교보생명의 역사는 한국 보험의 역사와 함께 했다.
◆외환위기를 전화위복 계기로
어려움을 모르고 성장해 온 교보생명은 1997년 외환위기로 한때 부도 위기에 내몰리기도 했다. 거래 대기업들이 줄줄이 도산하면서 2조원이 넘는 손실을 기록했다. 2000년엔 2540억원의 적자를 냈다.
서울대 의대 교수를 그만두고 1996년 최고경영자로 변신한 신창재 회장은 대대적인 경영 혁신에 나섰다. 외형 중심의 경쟁을 탈피하겠다고 선언했다. 잘못된 영업 관행을 뜯어고쳤고 설계사도 절반 이상 줄였다. 마케팅은 중장기 보장성보험 위주로 전환했다. 그 결과 1990년대 연간 400억~500억원에 머물던 순이익은 지난해 4335억원으로 늘어났다. 신용평가기관인 무디스(Moody's)는 교보생명의 신용등급을 국가신용등급과 같은 A2등급으로 최근 평가했다. 교보생명은 이제 100년 기업으로 도약하기 위한 새로운 준비를 하고 있다. 신 회장은 '좋은 성장론'이란 화두를 던졌다. 고객이 만족해야 매출과 이익이 늘고 고객 종업원 회사 주주가 모두 발전하는 선순환을 이루게 되며 이를 토대로 '존경받는 100년 기업'이 되겠다는 것이다.
김현석 기자 realis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