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50 중년男 자신 가꾸는데 아낌없이 투자

지난 7월 초 서울 그랜드 하얏트호텔에서는 이색 남성복 패션쇼가 열렸다. 늘씬한 모델들이 나오는 여느 패션쇼와 달리 탤런트 김병세ㆍ선우재덕ㆍ나한일,성악가 김동규 등 40~50대 중년 아저씨들이 모델로 등장했다. 객석도 대학 최고경영자 과정 수강생,지역 치과의사회 등 중장년 남성 일색이었다. 패션업체 RKFN이 중후하고 세련된 40~50대 '美중년'(미소년에 대칭되는 개념)을 겨냥해 내놓은 중장년 남성 캐주얼 브랜드 '엘파파'의 론칭쇼 자리였다.

경제적 여유와 패션감각이 있는 40~50대 남성,이른바 '골드 파파(gold papa)'가 새로운 소비주체로 급부상하고 있다. '외모 가꾸기'와는 거리가 멀었던 중년 남성들이 자신을 가꾸는데 시간과 돈을 아끼지 않고 있는 것.유행ㆍ명품에 치중하는 젊은 세대와 달리,이들은 무조건 젊은 취향보다는 자신의 기호와 라이프스타일에 맞춰 까다롭게 제품을 고르는 특징이 있다.

중장년층은 브랜드 충성도가 유달리 높아 이들을 겨냥한 제품은 장수 브랜드로 키우기 용이하다. 이에 발맞춰 패션ㆍ화장품 업체들이 골드파파를 겨냥한 다양한 브랜드를 선보이고 있다.

8월 중순부터 출시될 '엘파파'의 문진이 마케팅팀장은 "대부분 남성복 브랜드들은 젊은 감각을 내세우며 30~40대를 주고객층으로 두고 50대까지 흡수하는 정도였다"며 "그간 골프웨어와 아웃도어 의류 사이에서 모호하게 쇼핑을 해온 중장년층을 위해 이런 캐주얼을 선보이게 됐다"고 말했다. 엘파파는 '미중년' 이미지를 부각시키기 위해 영화배우 리처드 기어를 모델로 기용했다.

금강제화의 프리미엄 구두 브랜드 '헤리티지 리갈'은 꽃단장하는 중년 남성들 덕에 상반기 매출이 전년 동기대비 34% 늘었고,디자인 종류도 25개에서 30개로 확대됐다. 박명규 금강제화 상품기획자는 "예전엔 사이즈나 볼 넓이 정도만 맞춰 주문하던 수준에서 최근엔 자신만의 스타일을 찾는 중장년 고객들이 늘면서 구두 굽 높이나 색상,소재까지 까다롭게 주문한다"고 말했다.

남성들의 노화 방지를 위한 기능성 화장품도 인기품목이다. '왜 남성 한방 화장품은 없느냐'는 40~50대 남성 고객들의 요구로 LG생활건강은 한방화장품 브랜드 '후군'을 2006년 선보였는데 지난해 매출이 100% 성장했다. 이 업체의 고급 한방스파숍 '후 스파팰리스'도 40~50대 중년남성의 고객들이 늘자 이들만을 위한 특별 피부관리 코스를 마련했다. 또 현대백화점이 올 상반기 남성의 명품 구매액을 2005년과 비교한 결과 52% 늘었는데 이 중 20~30대는 27~28%였지만 40~50대는 60% 안팎에 달했다.

이 같은 현상에 대해 한상진 서울대 교수(사회학)는 "'골드 파파'의 등장은 세대 간 문화이식 현상으로 볼 수 있다"며 "TV를 보면 젊은 사람들 위주로 자신을 꾸미고 가꾸는 분위기가 만연하고,외모가 경쟁력인 시대에 40~50대들도 이에 발맞춰 가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미 일본에선 '美중년'들이 패션업계에서 막강한 소비층으로 자리잡은 상태다. 남성 월간지 '레옹(LEON)'은 40~50대 사이에 '레옹족'(일본의 美중년을 일컫는 신조어)을 전파시켰다. '중요한 것은 돈이 아니라 센스'라는 문구와 함께 고액 소득자들에게 패션ㆍ자동차ㆍ시계 등을 소개할 때마다 매진 사태를 빚고 있다.

안상미 기자 sarami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