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현대차.LG.GM이 단골 고객

지난 21일 경기도 평택 포승산업단지에 있는 영신금속공업 공장. 동그랗게 말려 있는 철근 뭉치가 조금씩 공작기계로 밀려들어가더니 어느새 스크루로 변신해 배출구에 자동적으로 쏟아진다.

이 공장에 배치된 150여대 기계가 만들어내는 스크루와 볼트 생산량은 연간 25억개 안팎. 간단한 전자제품을 조립하는 데 쓰이는 3원짜리 스크루부터 1개당 1000원에 이르는 자동차 조향장치용 볼트까지 그 종류는 1만여 종에 달한다.

스크루를 집어든 이정우 사장(46)은 "도로를 달리는 자동차나 각 가정의 거실에 놓인 TV의 상당수는 영신금속의 나사를 이용해 조립한 제품"이라며 "어떻게 보면 전 국민이 영신금속의 고객인 셈"이라고 말했다.

영신금속공업은 전자 자동차 건설 등 제조업체들에는 낯설지 않은 이름.삼성전자 LG전자 현대.기아자동차 GM대우 등 국내 굴지의 대기업을 고객으로 두고 있을 뿐 아니라 제너럴모터스(GM) 등 해외 메이커에도 납품하고 있기 때문이다. 영신금속공업의 시작은 대한민국의 중화학 공업이 꽃피기 시작한 1967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대학 졸업 후 10여년간 섬유와 염료를 수입 판매하며 '시장 트렌드를 읽는 눈'을 갖게 된 이성재 회장(81)은 '중화학 공업화'가 가져다줄 기회를 간파했다.

이 회장은 "전자 자동차 건설업이 활성화되면 당연히 나사에 대한 수요도 늘어날 것이라고 판단했다"며 "선풍기 라디오 등 우리 제품에 들어가는 나사가 모두 수입품이란 비참한 현실을 바꾸기 위해선 '누군가는 반드시 뛰어들어야 한다'는 사명감도 작용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무역업자가 제조업에 투신한다는 것은 모험에 가까웠다. 아무런 기반이 없던 이 회장은 '품질 좋은 나사를 만들면 판로는 열릴 것'이란 생각으로 기술력에 승부를 걸었다. 서울 문래동의 10평짜리 공장은 그와 10여명의 직원들에게는 신제품 개발을 위한 '연구소'나 다름없었다. 영신금속이 국내 최초로 개발한 '십(十)자 스테인리스 스크루'는 이 회장과 직원들의 땀과 눈물이 어린 작품이었다. 팔순이 넘은 노(老) 경영자는 지금도 골프카트를 개조한 전동차를 타고 일주일에 세 번씩 공장 구석구석을 돌며 기술자들과 얘기를 나눈다.

이 회장의 '기술경영'이 본격적으로 빛을 발한 건 1980년대에 들어서면서부터다. 혁신적인 제품을 쏟아내면서 '유망중소기업'(1983년 상공부) 타이틀을 따낸 데 이어 '기술진흥 공로 표창'(1985년 과학기술처)도 받았다.

장남인 이정우 사장이 합류한 것도 이 즈음이었다. 평소 "가업을 잇는 것을 운명으로 생각했다"는 이 사장은 1987년 영신금속 무역부에 말단 사원으로 입사했다. 최신 경영 이론(미국 위스콘신대 경영학 석사)으로 무장한 2세 경영인과 '산전수전' 다 겪은 창업 1세대는 서로 부족한 점을 보완해줬다.

하지만 1997년 닥쳐온 외환위기는 순조롭게 뻗어나가던 영신금속에 엄청난 시련을 안겨다줬다. 최대 거래처였던 기아자동차가 부도난 데 이어 대우자동차도 휘청거렸기 때문이다. 여기에 원자재 파동까지 더해지면서 영신금속은 이후 6년 연속 적자의 늪에서 허덕여야 했다.

1999년 대표이사로 취임한 이 사장은 고민을 거듭한 끝에 승부수를 띄운다. 2001년 기술연구소를 설립하는 등 연구개발(R&D) 투자를 늘리는 동시에 서울 구로동 공장과 인천 남동 공장을 매각하고 포승단지로 통합 이전키로 결정한 것.이 사장은 2003년 공장을 옮기면서 설비도 최신 제품으로 바꿨다. 일각에서는 "공장 매각 대금으로 재무 상태를 개선하라"고 부추겼지만,이 사장은 오히려 공장 매각 대금(140억원)보다 훨씬 많은 190억원을 새 공장에 투입했다. 적자 상태에서 벗어나기 위해 더 많은 돈을 투자하는 일종의 '역발상 경영'인 셈이었다. 내친 김에 불량률을 떨어뜨리는 운동도 병행했다.

결과는 대성공.기존 제품의 품질이 개선되고 신제품도 잇따라 출시되자 "납품물량을 늘려달라"는 국내외 거래처들의 '러브콜'이 쇄도했다. 특히 세계 최고 수준으로 평가받은 '자동차 접지용 볼트'는 GM의 글로벌 네트워크를 통해 전 세계에 공급되기 시작했다. 그렇게 2003년 226억원에 불과했던 매출은 4년 뒤인 2007년 555억원으로 2배 이상 확대됐다.

이 사장은 "결국 아버지의 창업 정신 가운데 하나였던 '기술경영'이 영신금속을 위기에서 구해낸 셈"이라며 "원자재 가격 인상 여파로 올해 경영 여건이 만만치 않지만 그간 수많은 난관을 극복해온 저력으로 이를 돌파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평택=오상헌 기자 ohyeah@hankyung.com